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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주몽,대조영,연개소문... 사극드라마의 공식

by betulo 2007.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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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문화방송에서 <있을 때 잘해>라는 아침드라마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아침에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때라 자주 그 드라마를 봤는데요. 처음엔 이혼당하고 새 삶을 개척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는가 싶어 재미있게 봤는데 점점 아침드라마스러워지더이다. 

불륜에 외도에, 질투에서 시작한 폭력, 납치, 행방불명, 거기다 남자 주인공 쫓아다니는 정신병자 아가씨까지. 나중에는 주인공 얘기보다 조연들 얘기가 몇 배는 더 많아지는데 보고 있으려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멋대로 해라>나 <내 이름은 김삼순><하얀거탑> 등 몇 개를 빼면 최근 몇년간 재미있게 본 한국드라마가 거의 없는 제 입장에선 최근 희한하기 그지없는 '고구려(高麗=고리, Khori)' 열풍을 이어받아 방송사마다 개떼같이 몰려들어 후딱 만든 <주몽><대조영><연개소문>도 관심 밖입니다. 

그럼에도 가끔 채널을 돌리거나 사극 좋아하는 아버지 땜에 별 수 없이 본 장면으로 짐작하건데 그 사극드라마는 <있을 때 잘해>를 비롯한 일반적인 한국 드라마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그건 한국의 사극 드라마를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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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 드라마?

사극 작가들은 전부 일신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일까? <주몽><대조영><연개소문>의 주인공들은 좋은 일은 혼자 다하고, 훌륭한 일은 혼자 다하고, 중요한 일은 혼자 다한다. 주몽을 보면 주몽이 예수같고, 대조영을 보면 대조영이 사도바울같고 연개소문 보면 연개소문이 모세같습니다.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서는 온갖 걸 다 갖다 붙입니다. <연개소문>에서는 안시성전투를 연개소문이 직접 지휘하고 <대조영>에서는 고구려복국운동을 펼치는 대조영이 신라 임금도 감동먹여 공동전선을 펴게 만들고 백제 복국운동세력도 뿅가게 만들어 함께 당나라에 대항하게 합니다. 예전에 <왕건>에서도 왕건의 훌륭하신 '교시'에 온 나라 사람들이 감화를 입어 '왕건은 뇌수요 우리는 손발이라' 죽어라 싸웁니다.

2. 뻔한 연애공식

좋고 멋진 건 혼자 다 하는 주인공 옆에는 주인공에 홀려서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주체성 상실한' 예쁘고 착한 아줌마들이 있습니다. <허준>에서 착한척은 혼자 다하던 아줌마가 딱 그런 인물이지요. <주몽>의 조강지처는 주몽을 위해 행불자가 돼서 쌩쇼를 하고 <왕건>의 첫 부인은 뜬금없이 비구니가 됩니다.

마초들의 욕구불만을 '학실'하게 풀어줄 청순가련형 현모양처 아줌마들 옆에는 언제나 자기주장 강하고 시부모를 우습게 알거나 질투를 일삼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여성들도 희한하게 주인공 남자한테만은 청순가련형으로 완벽변신하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지요.


3. 정치는 없다

주인공은 언제나 한점 권력욕이 없습니다. 오로지 조국과 민족을 위해 이 한몸 희생한다는 각오로 몸을 아끼지 않지요. 임금으로 등극하는 것도 주인공의 '품성'에 감동먹은 인간군상들이 추대해서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내리는 '구국의 결단'일 뿐입니다. 

<왕건>은 오로지 궁예임금에게 일편단심으로 충성을 다하지만 충성스런 의형제들이 간곡하게 요청하지요. <주몽>도 오로지 다물군을 이끌기 바쁜데 임금자리가 왠 말이냐고 손사래를 칩니다. <대조영>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겠지요.

현실 정치에 불만이 많은 건 이해하겠지만 이런 식으로 '공상비과학만화'를 만들어야 속이 후련한건가요?

정치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당장 연애에 몰두하는 남성과 여성(남성과 남성, 여성과 여성도 마찬가지겠지만) 사이에도 엄청난 정치적 관계가 있고 권력투쟁이 있습니다. 그건 좋고 나쁜 차원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당장 무리생활을 하는 산짐승들도 모여서 서열을 정하고 역할을 정하고 대장을 정합니다. 그리고 다른 무리와 싸우지요.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권력투쟁, 정치투쟁이 나쁜게 아니라 어떤 권력투쟁,정치투쟁인가. 어떤 지향을 가진 무리와 어떤 목표를 가진 무리가 경쟁하고 대립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4. 너무나 단순한 선악구도

주인공은 언제나 좋은 편, 상대편은 언제나 나쁜 편입니다. 어린이들 말마따나 주인공은 우리편, 반대편은 니네편이지요. 주인공은 언제나 옳은 결정을 내리고, 훌륭한 친구들이 있고, 공익만 생각합니다.

나중에 달라지긴 하지만 <주몽>은 '조선'의 영광을 위해 싸우는 의인이고 '대소'는 주몽을 시기하며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대조영>은 오로지 고구려를 생각하지만 남생을 비롯한 무리들은 사리사욕만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봅니다. <하얀거탑>에 시청자들이 열광했던 건 현실 속 인물들, 선인이면서 악인이고, 공익을 외치면서 사익을 생각하고, 나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을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 아닐까요. <하얀거탑> 최대 단점이 바로 '현실감 없이 착하기만 한 최도영'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겁니다.


5. 인종차별도 서슴치 않는다

주인공은 무조건 훌륭하니 반대편은 당연히 나쁜 놈이 되지요. 여기서 더 나가면 인종차별도 불사합니다. <주몽><연개소문><대조영>에서 한나라, 당나라 사람은 대국주의에 사로잡힌 제국주의자가 될 뿐이지요. 특히나 <연개소문>에서 수양제를 묘사하는 방식은 예전 연산군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6. 우리는 한 민족? 2천년 전에도?

주인공 무리는 언제나 민족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 공식에 반대하면 자동으로 악한이 되지요. <주몽>에서 대소가 악인에서 선인이 되는건 민족의식 여부가 되지요.

<주몽>은 오로지 '조선'은 우리와 한 민족이라며 '다물'을 외치고, <왕건>은 '삼한일통'을 외치지요. 이런 공식을 위해 <대조영>의 출생신분은 다인종사회 고구려를 보여주는 장치가 아니라 '고구려는 위대했다'는 장치를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7. 언제나 일치단결

사극에서 계급갈등은 없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국민소득2만달러에 앞장서자는 '일심단결'만 있을 뿐이지요. 노예도 없고 사적으로 횡행했던 처벌도 없습니다.


8. 고증은 필요없다

한민족은 위대했다는 걸 보여주려다 보니 옷도 화려해지고 군장이 황제가 되고 고대시대인지 고려시대인지 모를 정도로 질서정연한 관료제 국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다. 주인공들의 고난을 위한 장치로 등장하는 한나라 철갑기병은 화살을 튕겨내는 방탄복으로 부활합니다.

<연개소문>에선 대단한 사실이라도 되는 양 고구려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성우 목소리가 나와서 졸린 눈을 확 깨우는데요. 인용이란게 환단고기니 조선상고사니 합니다. 할 말이 없지요. 그래놓고는 동북공정은 나쁜 짓이라고 하니 후안무치할 따름입니다.

하긴 세종로4거리에 있는 이순신동상이 이순신 장군을 졸지에 왼손잡이로 만들어버릴 정도니 할 말 다했지요. 국어교과서에도 나오지요. "큰 칼 옆에 차고" 근데 왜 이순신 동상은 "큰 칼 옆에 들고"가 돼 버렸을까요.

한손에 칼 들고 말을 달린다. 한손에 물건 들고 자전거 타는 식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9. 유럽중세 드라마?

반듯한 검, 활과 화살 없는 전투장면. 딱 유럽중세 드라마입니다. 고증을 제대로 안하니 맨날 보던 유럽중세 드라마,영화만 머리에 들어있나 봅니다.


10. 결국 핵심은 상상력 부족

세상을 너무나 단순한 선악구도로 보고, 민족은 선이고, 주인공은 항상 옳고... 제가 보기엔 결국 상상력 부족을 보여주는 사례일 뿐입니다.

노무현의 최대 실정은 제가 보기에 국민들의 상상력을 죽여놨다는 겁니다. 희망섞인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만들어놨지요.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과거는 묻지 말고 미래를 보자면서 60년 넘게 이어져온 한미동맹년을 무조건 지키자며 새로운 한미관계 얘기에 손사래를 칩니다. 김부식 같은 사대주의자 땜에 나라가 이 모냥 됐다는 사람들, 부국강병을 외치는 사람들이 60년 넘게 주둔하는 주한미군에는 아무 말도 안하고 있습니다. 외부충격으로 사회를 선진화하자고 말할 정도로 국민을 못 믿는 사람들이 한민족은 뛰어나니까 한미FTA 잘 이겨낼거라고 말합니다.

왜 사람들은 미국 드라마를 좋아할까요. 여러가지 맘에 안드는 게 많지만 그래도 넘치는 상상력을 즐기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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