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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6 22:55

강제전역 위기 몰린 피우진 중령 (2006/10/24)

[인터뷰]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행정소송이라도 낼 것…명예롭게 전역하고 싶다”

2006/10/24


처음엔 완치된 유방암 때문에 전역을 해야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부당하게 전역당할 위기에 처한 ‘여군 최초 헬기 조종사’를 돕기 위해 움직이던 시민단체 간사는 기자에게 전후 사정을 제보하면서 “꽉 막히고 마초적인 국군이 유능한 군인을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간사를 통해 지난달 26일 <시민의신문> 회의실에서 만난 피우진 중령은 어려운 상황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난 9월 14일 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결정이 나와서 현재는 전역대기중이다. 지난달 20일 통보를 받은 그는 국방부에 인사소청을 냈다. 소청이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그는 다음달 원치 않는 전역을 해야 한다. 피 중령은 인사소청이 기각되면 행정소송을 낼 계획이라고 한다. 


여군 최초 헬기조종사 피우진 중령

민간인 복장으로 나타났지만 말투에서 벌써 군인 티를 숨길 수는 없었던 피 중령과 세 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의문은 ‘여성성’과 ‘군인’이라는 신분이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임에도 피 중령이 들려주는 한국군은 여성성이 군복무에 걸림돌이 되는 구조였다. 피 중령은 “우리는 꽃이 되고 싶지 않다”고 절규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또 하나 충격이었던 것은 군대에서 여군들의 인권실태가 충격적일 만큼 열악하다는 점이었다. 


피 중령은 현재 전역대기중이다. ‘군인’으로 남기 위해 ‘여성’을 버렸지만 국군은 ‘여성’을 버렸다는 이유를 들어 피 중령에게 ‘군인’ 제복을 벗으라고 강요한다. 물론 그건 명분이고 실제로는 누구에게나 원칙대로 대하는 것이 상급자들에게 밉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성성을 단지 장식품으로만 생각하는 군대. 이런 군대에 희망이 있을까. 


군대에선 ‘여성성’이 걸림돌


자신이 유방암에 걸렸다는 것을 안 것은 2002년 8월이었다. 목욕을 하다가 혹이 잡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유방암 1기라고 했다. 고민 끝에 그해 10월 민간병원에서 유방절제수술을 받았다. “의사에게 혹이 없는 유방도 제거해 달라고 했어요. 의사는 전이될 위험이 거의 없다며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옆에 있던 인턴의들은 미친 여자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구요.” ‘유방’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피 중령은 이를 스스로 지워 버렸다. “직업상 가슴은 백해무익하다”는 게 이유였다. 


피 중령에 따르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군에는 여군을 위한 의료시스템과 환경이 전혀 없다. 산부인과를 담당하는 의사도 국군수도병원 등 큰 병원에만 한 두명 있을 뿐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을 당시 피 중령은 육군항공학교에 근무했는데 군의관 두 명은 내과와 치과 전공이었다. 인근 논산병원에도 산부인과는 없었다. 거기다 모두 남자 의사다. 


당연히 군병원에서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는 것을 꺼리게 된다. 남자 군의관에게 가슴을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군 의료기술이 미덥지도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군 규정상 암이라고 판정만 되면 치료여부와 상관없이 무조건 전역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결국 피 중령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민간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30년 가까이 군대에서 생활하면서 ‘가슴’은 피 중령에게 가장 불편한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군 생활에서 ‘가슴’은 언제나 걸림돌이었다고 말한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거나 헬기를 조종할 때처럼 활동이 많을 때는 압박붕대로 가슴을 동여매곤 했다. 항상 “이 놈의 가슴 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도 피 중령은 한 번도 양쪽 가슴을 모두 없앤 걸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여성’을 지우고 ‘군인’으로 남고 싶은 결단임이었지만 군인으로 설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은 지나친 역설이었다. 


"괘씸죄에 걸리다"


수술을 받고 나서도 군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피 중령도 굳이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 2003년 신체검사 당시 가슴에 있는 흉터를 보고 간호장교들이 군의관에게 보고했다. 피 중령은 사실대로 얘기했다. 당시 군의관은 “신체검사를 합격할 수는 없다”며 “다른 지장은 없겠지만 진급에 영향을 주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중 자격 불합격, 일반장교 합격’으로 판정을 받았다.

 

그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부대에선 문제 삼지 않았다. 2004년에는 육군항공학교 학생대대장으로 발령 받아 1년 동안 학생대도 지휘했다. “여성 신체 특징이 조종사 업무수행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주위시선과 환경이 문제인 셈이지요.”


학생대장으로 1년쯤 근무한 지난해 5월경 문제가 생겼다. 2005년에도 2004년과 똑같은 신체검사 판정을 받았는데도 “불합격이니까 9월 28일 공중자격심사위원회에 회부 하겠다”는 구두연락이 왔다. 직속상관은 그 전해에는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았다. 피 중령은 “근무에 지장을 준 것도 없고 치료받은 사실을 모르지도 않았는데도 그런 연락이 온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피 중령은 “한마디로 ‘괘씸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린 것에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해 항공학교장에게 ‘찍혔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제 비행스케줄을 상부에서 빼버리곤 했습니다. 당시 항공학교장(현 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의 의지로 위원회 회부돼서 조종사 자격해임을 당했지요. 통상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그 사유로 입원을 시키든 통원치료를 하든 절차를 밟은 다음에 심신장애로 판단되면 조종사 자격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멀쩡한 사람을 조종사 자격 해임을 먼저 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아픈 곳 없이 병원신세


신체검사 결과 불합격을 받았고 사유가 암 병력이니까 병원에서 심신장애여부를 판단하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피 중령은 항공학교장 인사명령으로 졸지에 해임당하고 논산병원에 지난해 10월 19일 입원했다. 이·취임식도 못하고 후임자도 없이 병원에 가게 된 것. 부하들에게 인사도 못하고 사무실도 그대로 두고 왔다. 물론 짐을 챙기지도 못했다.  진료를 하는 게 아니라 병력을 조사해서 등급을 매기는 과정이었다. 일주일 동안 하는 일 없이 있다가 올해 3월까지 집에서 대기를 해야 했다. 


논산병원에서 의무검사를 받은 후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군 인사법에 따르면 장애등급 1~7급은 자동전역이었다. 장애판정이 나오자 육군본부 중앙전공상심사위원회에 회부됐다. 그런 와중에 한겨레에 기사가 났다. 김희선 열린우리당 의원한테 연락이 와서 자초지종을 묻길래 복직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국방부에 얘길 했고 이후 군에서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당시 3월 16일 전역심사위원회가 열리기로 돼 있었다. 일단 심사보류판정을 받았고 다시 입원 명령이 내려왔다. 처음부터 다시 조사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결국 4월 23일부터 8월 9일까지 입원해 있었다. 6월 1일까지는 논산병원에 있었고 그 다음은 대전병원에 있었는데 “대전병원은 여성병실이 따로 있고 시설도 더 좋아 지내기가 편했다”고 한다. 8월 9일 의무조사를 다시 했는데 이번에도 심신장애 2급을 받았다. 


전역심사를 위해 상해등급 판단을 위한 전공상심사도 다시 했는데 피 중령 상해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왔다. 근무 여부를 결정짓는 장애등급은 2급이라 전역대상인데 막상 연금액수가 걸린 상해등급은 최하위인 7급으로 나온 것이다. 상해등급은 상이연금 지급과 직결된다. 당시 군의관은 “심신등급 기준과 상이등급 기준은 별개”라며 “피 중령은 보조인도 필요 없고 생활에 지장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퇴원 후 피 중령은 다시 전역대기가 됐다. 의무조사를 하면 국군본부에 보고서를 보내고 그쪽에서 한달에 한번씩 월말에 전공상심의를 한다. 보고서가 육군본부에 올라간 건 8월 17일이었는데 그 전에 이미 전공상심사를 해 놨다고 한다. 원칙대로 하면 9월 전공상심의에 내 경우가 올라가고 전역심사는 10월에 해야 한다. 그럼에도 8월에 전공상심사를 하고 9월에 전역심사를 했다. 결국 피 중령은 9월 14일 전역판정이 나왔다. 


명예롭게 전역하고 싶다


인사규정대로 자연스럽게 전역한다 해도 피 중령에게 남은 군 생활은 앞으로 3년 뿐이다. 피 중령은 “내 소원은 오로지 3년간 현역으로 근무하다 명예롭게 전역하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얼핏 피 중령은 여전히 ‘여성’이 아니라 ‘군인’이길 소망하는 사람이다. 스스로 밝힌 “군에 있고 싶은 이유”도 ‘군인’으로서 소명감이다. “군입대는 의무입니다. 원하지 않는 젊은이도 군대에 들어옵니다. 그들을 지금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대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장교는 그러라고 있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근무해왔고 그래서 내가 군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 중령의 소망이 이뤄지더라도 3년 후에는 ‘중령’이 아니라 한 여성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30년 가까이 ‘여성’을 걸림돌로 여기고 여성성을 없애도록 강요받는 삶을 살았던 피우진씨가 언제가 사회에 나가서는 온전한 ‘자신’을 되찾기를 희망해 본다. 


피 중령은 오는 30일 전남 해남에 있는 땅끝마을을 찾는다. 거기서 시작해 걸어서 통일전망대까지 국토종단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대략 한 달 동안 걷고 또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보려고 한다. 


시민의신문 제 673호 11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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