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홍콩, 중국의 벽에 갇힌 ‘인권’

by betulo 2007. 3. 25.
728x90


[아시아ㆍ인권 토론] 홍콩식 가치와 인권담론의 한계

포스트 9.11 시대 아시아와 인권-홍콩
2005/9/29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는 <시민의신문>과 함께 9월부터 다섯번에 걸쳐 ‘포스트 9·11 시대 아시아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공개 세미나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말레이시아·홍콩·중국·일본·한국을 주제로 각 지역 전문가들을 초청해 다양한 인권문제를 함께 고민한다. 이번 행사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맥락에서 새로운 인권지형을 모색하는 학문적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집자주>

○ 주최 : 성공회대학교 아시아NGO정보센터, NGO대학원, 시민의신문
○ 후원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 
○ 장소 : 새천년관 7305호

①9/12(월) 오후 4시 -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과 인권”
②9/26(월) 오후 4시 - “인권 : 홍콩과 중국의 함수”
③10/10(월) 오후 6시 30분 - “일본의 헌법개정논의와 평화적 생존권”
④10/24(월) 오후 4시 - “한국의 이주 노동자 정책과 과제”
⑤11/7(월) 오후 4시 - “라운드테이블 토론”


“잔인하게 말해서 홍콩은 1999년 이미 마지막 기회를 놓쳐 버렸다. 중국 본토에 사는 홍콩인 자녀들이 홍콩 거주권을 달라고 할 때 홍콩 사람들은 중국인은 누구이고 홍콩인은 누구인지, 혈통이란 무엇이고 민족이란 무엇인지, 식민성이란 무엇인지,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해야만 했다. 그러나 홍콩은 그들을 그냥 추방하는 것으로 끝내 버렸다. 홍콩의 정체성을 고민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지난 2003년 7월 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6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 홍콩 도심에서는 시민 50여만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당국이 국가안전법을 개정하려고 시도한 게 발단이었다. 

이달 말 개정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홍콩 기본법 23조(국가안전법)는 국가전복이나 반란선동 금지, 국가안전위험조직 금지 등을 규정하고 있었다. 법을 확대 적용할 경우 인권 침해와 종교 탄압의 빌미로 악용될 수 있다는 반발을 사고 있었다. 시민들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홍콩 당국은 결국 23조 개정작업을 취소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홍콩의 시위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민주화된 홍콩’의 저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지난 9월 26일 ‘인권: 홍콩과 중국의 함수’를 주제로 강연한 장정아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조심스레 고개를 가로 젖는다. 


그가 보기에 홍콩에서 인권·민주·법치·자유는 추상적으로는 중요시되지만 현실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는 측면이 강하다. “많은 경우 중국반대가 곧 인권이요 민주요 법치로 통용되고 식민성을 근본에서 성찰하거나 ‘홍콩식’ 인권담론을 진지하게 재검토하는 노력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 교수가 내리는 결론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홍콩은 150년 넘는 역사의 한 장을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1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홍콩은 식민지였고 ‘중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다. 홍콩인들은 중국본토에서 정치경제적 이유로 건너온 난민들에서 기원한다는 독특한 역사도 중요한 변수다. 


“홍콩의 인권문제는 결국 중국의 위협 앞에서 어떻게 인권을 지킬 것인지가 문제가 됐으며 인권 문제는 민주·자유·법치와 혼용되면서 홍콩이 중국의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할 ‘홍콩적’ 가치로 강조됐다.”


홍콩에서 ‘인권’이라는 주제는 중국과의 관계가 너무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는 홍콩 내부의 식민성을 극복하는 과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게다가 주권, 생존권, 발전권이 식민지 시기 오히려 보장되었고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면서, 즉 조국으로 돌아가면서 오히려 인권이 나빠졌다는 것도 인권담론을 왜곡시킨다.

 중국에서는 “타국이 인권을 위협한다”고 강변하지만 홍콩에서는 ‘조국’이 인권을 옥죄는 게 핵심 문제다. 즉 홍콩이 중국 위협 앞에서 지켜야 하는 홍콩적 가치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홍콩 시민단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권현안도 중국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럼 영국 식민지 시기에는 민주화가 잘 이뤄졌나 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그는 “집회시위나 민주선거 같은 기본적 자유권조차 90년대 이전까지는 전혀 없었고 중국반환을 앞두고 10년도 안되는 시기에 잠깐 나타난 현상”이라며 “그런 자유조차 중국반환 이후 위협받으니까 사람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식 가치?

이와 관련해 밥 베이티(Bob Beatty)라는 학자가 2003년 쓴 책은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홍콩정치인 89명 가운데 대다수는 싱가포르에서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에는 별로 동의하지 않지만 ‘홍콩식 가치’ 혹은 ‘홍콩 나름의 특색’이 있다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했다. 그들이 말하는 홍콩의 독특한 가치란 다름 아닌 “정부의 최소한의 간섭과 이로 인한 경제적 자유, 법치 존중, 서구와 중국문화 그리고 홍콩식의 효율성이 혼합돼 있다는 점, 점진적인 민주화, 언론과 발언의 자유” 등이다.  

  장 교수는 “그게 무슨 ‘홍콩식’이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렇듯 추상적인 개념들을 강박관념처럼 강변한다는 사실”이라며 “결국 ‘홍콩식’이라는 것은 중국을 염두에 둔 인권담론”이라고 꼬집었다. ‘홍콩식’이란 다름아닌 “중국보다 경제자유가 많고 중국보다 법치를 존중하며 중국보다 민주화됐고…”라는 것이다. 

장 교수의 주장에 대해 토론자로 나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도 홍콩에서 나타나는 인권논의를 비판적으로 지적했다. 그는 “홍콩에서 강조되는 인권, 법치, 자유 등의 가치가 갖는 가장 중요한 한계는 이들이 홍콩인에게 내재화된 가치라기 보다는 다른 어떤 목적을 위해 활용되는 도구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목적이란 특히 경제적 번영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인권, 자유, 법치란 독자적인 가치로 인정되기 보다는 홍콩의 경제적 번영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식으로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교수는 “홍콩만 가진 특수한 한계로 볼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자체가 보편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거 금융과 무역 허브로 번성했던 홍콩은 점차 경제적으로는 상하이에 밀리고 정치적으로는 베이징에 종속된다. 표준중국어인 북경어를 쓰는 홍콩사람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애초 뿌리가 얕았던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모래성처럼 흩어지는 조짐을 보인다. 방청객이었던 조효제 교수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2005년 9월 29일 오후 16시 50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