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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1 14:16

책으로 돌아본 2018년

2018년도 저물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책을 통한 총화를 해보고자 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책 기준이 있습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잡식성이요 닥치는대로 과식하자는게 기준이라면 기준인지라 특별히 어떤 종류가 좋다 나쁘다 하는게 없습니다. 기왕이면 역사책이거나 역사적 맥락을 담은 책에 손이 먼저 가고, 소설이라면 역시 단편보단 대하소설을 선호합니다.(단편은 감질맛나니까 ^^). 스스로 생각해도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은 기준도 있는데, 그건 영어 제목을 한글로 써 놓은 책은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것과, 속칭 '베스트셀러'에 그닥 흥미가 없다는  정도 되겠습니다. 

가령 꽤 흥미있어 보이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라는 대하소설이 있습니다. 책소개에 보면 3000만부가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가시나무새>의 작가 콜린 매컬로가 30여년에 걸쳐 완성한 22권짜리 대작입니다. 역사소설에 대하소설, 거기다 제가 꽤나 중시하는 '고증'을 잘해서 칭찬받았다는데, 저는 여전히 이 책을 읽을 생각이 안듭니다.

 순전히 '마스터스 오브 로마'라는 제목 때문입니다. 차라리 1부 '로마의 일인자'를 책 전체 제목으로 했더라면 마음이 동했을텐데 말이죠. '파운데이션'(아이작 아시모프)이나 '프로메테우스'(세레브랴코바)처럼 달리 방법이 없어보이는것도 아닌데도 이런 현학적이고 게으른 제목달기라니. 뭔가 애러건트하고 스투피드한 '다크 포스'가 우주에 퍼져 있는 기분이 드는건 순전히 기분 탓이겠지요.

 물론 세상에 예외는 없는 법이지요. 작년에 읽은 <콜디스트 윈터>라는 책은 제목만 놓고 보면 분서갱유를 해도 시원찮습니다만, <최고의 인재들>을 쓴 존경하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유작이라는 이유로 10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제 책꽂이에 고이 잘 모셔놨습니다(책 표지는 물론 보이지 않도록 책가위로 잘 가려놨습니다). 

2018년 한 해 동안 읽은 책은 65권입니다. 논문 8편과 시사IN 55편을 더해서 모두 3만 960쪽을 읽었습니다. 월평균 5.9권, 2580쪽이군요. 연말에 역사책 위주로 읽지도 않았는데 연말로 갈수록 급격한 증가추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5~6월에 독서량이 극히 적은 것도 눈에 띕니다. 언론진흥재단 기획취재지원을 받은 '동북아신경제지도' 기획을 준비하고 열흘가량 현지출장을 다녀오느라 눈코뜰새없이 바빴던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일간지 기획기사라는게 때론 계륵같아서 품은 많이 들고 주목은 덜 받기 십상인데다가, 출입하던 기재부는 일이 언제나 넘치는데 인사이동으로 혼자서 기재부를 담당하던 시기였던것도 큰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기를 지나고, 세종시를 떠나 서울로 돌아오면서 독서량이 급증했습니다. 서울시를 출입하면서 구청을 다닐 일도 많아졌는데 역시나 지하철과 독서는 궁합이 잘 맞는 듯 합니다. 가령 서울시청에서 노원구까지 가려면 지하철만 30분 넘게 탑니다. 출퇴근 지하철에 여기저기 다니느라 지하철 한두번 타는것까지 더하면 독서시간이 두 시간 가까이 확보할 수 있는 셈입니다. 


이걸 '전년대비' 방식으로 2017년과 비교해보면 3850쪽을 더 읽었습니다. 월평균으로 비교하면 2017년보다 0.6권, 221쪽을 더 읽었습니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14년간 추이를 보면 평균 67.8권, 2만 6016쪽입니다. 2.8권 더 적게 읽은 대신 4944쪽 더 읽었습니다. 2018년에는 여느 때보다 더 두꺼운 책을 읽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4년에 2만 1759쪽(75권)으로 바닥을 친 뒤 꾸준히 늘어서 3만쪽 고지를 돌파했습니다. 참고로 가장 저조했던 때는 2007년 1만 8891쪽(58권)이었습니다. 

작년까진 2008년 이후 추이를 비교했습니다. 그러다보니 3만쪽을 넘긴 건 11년만에 최대 실적이라고 자화자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전 자료에서 월간 권수와 쪽수를 기록해놓은 걸 바탕으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연간 독서기록을 발굴해놓고 보니 살짝 부끄러워집니다. 2005년에는 무려 120권, 3만 6353쪽을 읽었습니다. 2006년에도 93권 3만 3674쪽입니다. 새로운 사료를 발견하거나 유물을 발굴하고 나서 역사기록이 달라지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제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조만간 시간내서 2005년 이전 기록도 정리를 하면 좀 더 흥미진진한 사실이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2005년 이전 기록은 책 이름만 적은 관계로 자료정리하는데 품이 많이 들 것 같아 엄두가 좀 안나긴 합니다. 


2018년 읽은 책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고,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10권 골라봤습니다. 읽었던 순서를 무시하고 가나다순으로 배열해서 짧은 서평을 달아봅니다. 


<감세국가의 함정>
세금 깎아주는 게 민생이라는 오래된 신화에 도전하는,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정책에 대한 진지하고 성숙한 통찰력을 제공하게 합니다. '부자감세'는 물론이고 흔히 진보적인 정책인양 포장되는 '부자증세'와 '서민감세'마저도 퇴행적이고 자기파괴적인 제 살 깎아먹기라는걸 치열하게 논증했습니다. 제 박사논문을 수정보완한 단행본이 조만간 나올 예정인데 작년에 한창 원고를 다듬다가 이 책을 읽고는 '이런 좋은 책이 있는데 내가 책 하나 더 내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몇달간 작업을 못했습니다. 

<그레이트 게임>
종횡사해하며 역사와 지리를 엮은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영국인으로서 자의식 과잉과 인종주의 구린내가 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우물안개구리가 넘쳐나는 이 나라에는 이런 책이 더욱 많이 읽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목은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걸 굳이 언급하고 싶습니다.)

<불평등의 역사>
수십년째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이자 도약과 침체를 가를 단층선인 불평등 문제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한국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할 길이 혁명, 전쟁, 체제붕괴, 전염병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대안 제시가 좀 약하긴 합니다만 그건 '감세국가의 함정'에서 찾으면 될 듯 합니다.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 올로프 팔메>
불평등을 극복하고 감세국가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스웨덴의 경험과 고민을 살피지 않을 수 없겠지요.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급진적인 사회민주주의 지도자가 된 올로프 팔메를 통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대안을 모색하게 합니다. 깔끔한 편집과 매끄러운 문장 덕분에 금방 금방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더할나위없는 매력입니다. 
<유라시아 견문>
2018년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논쟁적입니다. 저자를 만나 밤새 묻고 토론하고 싶은 책을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을 꼽겠습니다. 사실 역사를 다룬 부분은 넓고 깊은 식견이 빛을 발하며 독자를 빨아들입니다. 토론해보고 싶은 건 미래 진단, 특히 중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겠습니다. 어쨌든 생각할 꺼리가 끊이지 않게하는 내공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자신에게 고용된 사람들>
자영업자 문제는 불평등 문제와 직결되고 조세정책에서도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이며, 재정정책에서도 어려운 숙제를 던집니다. 한국 경제의 뜨거운 감자인 자영업자들은 누구인지, 어떤 정책을 펴야 하는지 냉정한 분석틀로 분석했습니다.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한국 역사학이 꾸준히 내공이 깊어진다는 걸 느끼게 하는, 씨줄과 날줄로 잘 엮인 역사책입니다. 비운의 개혁군주라는 단편적인 인식틀로만 접근했던 정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도록 합니다. 정조의 한계와 시대의 한계, 일탈을 꿈꾼 지식인의 한계를 통해 21세기 한국의 한계에 주목하게 됩니다. 

<지리의 힘>
지도라는게 부동산 투기만을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며, 국가발전의 제약요소와 극복방안을 위한 핵심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걸 일깨워줍니다. 가뜩이나 틈만 나면 구글맵 들여다보는게 취미생활이었습니다만, 이 책 읽고 나서 더욱더 자주 구글맵을 벗삼게 됐습니다. 

<최고의 인재들>
위에서 언급한 데이비드 핼버스탬을 세계적인 언론인(이자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명작입니다. <콜디스트 윈터>보다도 100쪽이 분량이 더 많습니다. 그리 똑똑하고 훌륭한 최고 인재들이 모여서 베트남전쟁이라는 수렁에 빠지는 과정을 세밀하게, (때론 너무 자세하게) 기술합니다. 특히 중국 국공내전이 미국 외교정책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 그로인한 베트남정책 왜곡 등을 다루다보면 국제정치와 미국에 대한 이해가 한결 성숙해지는걸 느끼게 됩니다. 방대한 취재와 자료조사에 경의를 표합니다. 

<한국 복지자본주의의 역사>
존경하는 신진학자 김도균 박사의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다듬었습니다. 사실 김도균 박사의 학위논문인 < 한국의 자산기반 생활보장체계의 형성과 변형에 관한 연구: 개발국가의 저축동원과 조세정치를 중심으로>(2013)는 제가 박사논문을 쓰느라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때 엄청난 자극과 영감을 준 책이었습니다.(이 자리를 빌어 김미경 교수와 김도균 박사에게 감사 인사를.) 문재인 정부의 속터지는 '확장적 긴축정책'을 보면서, 답답하기 짝이 없는 현실의 뿌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만들어졌는지 그 흐름과 맥락을 되짚어보게 합니다. 그렇다고 그저 자괴감에 빠지는 걸로 그치는 책은 결코 아닙니다. 책을 읽다보면 '경로의존성'이라는 역사적 무게에 짖눌릴수도 있겠습니다만, 폴라니도 얘기했듯이 '진리는 만유인력 법칙이 아니라 만유인력 법칙에도 불구하고 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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