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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 17:43

文 핵심공약 ‘지방분권’ 기재부 반대에 막혀 1년 넘게 표류중


 문재인 정부가 천명했던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 종합대책이 발표도 되기 전에 대폭 후퇴하고 있다. 재정분권 시기와 규모를 둘러싸고 정부가 갈피를 잡지 못하면서 재정분권 공약 자체가 용두사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부처간 협력은 안되고 관료들은 저항하는데 청와대는 정책조율에 실패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8월 발표도 못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올해도 물건너갔다는 비관론이 높아진다. 


 정부 관계자와 지방재정 전문가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산하 범정부 재정분권 태스크포스(TF)는 지난 4월 재정분권 권고안을 청와대에 보고했지만 청와대에선 4개월이 되도록 종합대책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에선 TF 내용을 대폭 뜯어고친 수정안을 마련중이지만 이번에는 내용을 전해들은 자치분권위원회와 TF에서 “공약 후퇴”라며 반발하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재정분권 종합대책 발표 역시 지난해 12월에서 2월로, 다시 3월로 연기된 뒤 발표시기조차 확정을 못짓고 있다.



 재정분권TF가 당초 내놓은 권고안은 국세와 지방세 구조개편을 통해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를 늘려 현행 국세·지방세 비중(8:2)을 장기적으로 6:4까지 바꾸고 지자체 자주재원을 확충하는게 핵심이었다. 국고보조사업 보조율 체계 개혁과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 축소도 담았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제동이 걸렸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 입김이 반영된 청와대 수정안도 명목상 공약에 부합하긴 한다. 하지만 전국공통 성격이 있는 지방사무를 국가사무로 환원하는 문제는 진전이 없고 오히려 일부 국가사무를 지방으로 이관하는 등 각론이 문제”라고 말했다.


 당초 정부가 재정분권을 강조하면서 지자체에선 지방재정 확대라는 오랜 숙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TF 권고안 역시 지방재정에 미치는 플러스 효과는 10조원대였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논의중인 수정안은 많아야 2~3조원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청와대 수정안이 공개되면 지자체에선 엄청나게 실망할 것”이라면서 “청와대에서도 그 점을 우려해 공개를 미루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분권TF 권고안은 지방소득세와 지방소비세를 늘려 현재 8대 2인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장기적으로 6대 4까지 바꾸고 지방자치단체의 자주재원을 확충하는게 핵심이었다. 국고보조사업 보조율 체계 개혁과 균형발전특별회계(균특) 축소도 담았다. 이 계획대로라면 지방재정은 지금보다 10조원 이상 늘어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기획재정부의 입김이 반영된 청와대 수정안도 명목상 공약에 부합하긴 한다. 하지만 각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세 비중을 늘리는 대신 일부 국가 사무를 지방으로 이관하도록 하는 바람에 지방재정 확대 규모는 많아야 2조~3조원 수준으로 줄어든다”면서 “일부 지자체는 오히려 재정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정부는 지난해 대선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지방분권 공약을 논의하는 임무를 국무조정실에 맡겼다. 하지만 반년 가까이 진척이 없자 지난해 11월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산하에 범정부 재정분권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재정분권은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사이에 존재하는 시각차가 크다. 애초에 청와대가 주도했어야 하는 사안이었지만 기재부와 행안부를 아우르기엔 역부족인 국무조정실과 TF에 논의를 맡긴 것 자체가 패착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2월에는 재정분권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결국 TF는 3개월이라는 시간제약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갈등관리 전문가는 “복잡한 사안에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종의 갈등사안을 다룰 때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접근해야 한다는 갈등관리의 기본원칙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TF 논의과정에서 기재부가 제기했던 공동세 도입 안건이나 국가사무를 지방사무로 이전하는 문제 등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지방재정 전문가들은 기재부가 엉뚱한 안건을 제시하며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고 기재부에선 행안부와 지방재정 전문가들이 논의를 독점한다는 불만이 커졌다. 결국 기재부는 청와대 논의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TF가 내놓은 권고안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TF 논의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기재부가 제기한 안건 가운데 ‘2월까지 결론을 내야 하는데 그 문제까지 논의할 시간이 없다’며 거부당한게 많았다.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지방세를 지자체별로 배분하는 문제도 별 논의 없이 행안부에 맡기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그게 독이 됐다. TF권고안을 청와대에서 검토할 때 기재부가 ‘TF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반박하기 쉽지 않다. 결국 TF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을 청와대가 다시 다루게 됐고, 그 과정에서 기재부가 제기한 의제가 많이 반영되면서 재정분권 자체가 후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TF에서 청와대로 무대를 옮겨가면서 기재부와 행안부의 갈등은 더 커졌다. 한 관계자는 “기재부에선 문 대통령의 “연방제 수준” 발언에 파고들었다. 연방제라는게 지자체 권한도 커지지만 책임도 커지는 구조 아니냐는 식이었다. 그걸 활용해 재정분권을 ‘무늬만 공약’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른 전문가는 “기재부는 국가재정을 다루는 성격상 지방분권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지방자치의 수호신인 양 행세하는 행안부가 과연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논의과정을 철저히 숨기는 지나친 비밀주의는 문제를 더 복잡하게 했다. TF는 지난해 11월 구성된 뒤 토론회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청와대는 한 술 더 떴다. 자치분권위원회와 TF 관계자들은 4월에 권고안을 청와대에 제출한 뒤 수정안 논의과정은 물론이고 향후 계획조차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한 TF 관계자는 “지자체와 지방재정학자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어보는데 대답해줄 게 하나도 없다”고 털어놨다.


 재정분권TF를 둘러싼 논란은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발생했던 난맥상과 닮은꼴이다. 재정개혁특위 역시 위원장 선임이 늦어지면서 반년 가까이 허비한 끝에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4월에 구성했다. 특위는 7월 종합부동산세 개편과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 등 권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권고안 발표 하루만에 청와대와 기재부가 금융소득종합과세 강화를 백지화시키면서 ‘그럴거면 특위는 뭐하러 만들었느냐’는 논란을 자초했다. 특위는 재정개혁을 위한 동력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금융소득종합과세 백지화는 정부가 말하는 공론화가 결국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에 불과하다는 선례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잃은 건 정책신뢰였고 키운건 정책혼선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결국 청와대가 책임지기 싫으니까 떠넘기는 것 아니냐. 책임감이 없다”면서 “공론화를 제대로 하려면 정부 방침과 다른 결론이 나왔을때 결정을 미뤄서라도 더 깊이 숙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 교수는 “중앙정부 관료들은 자기들이 가진 막강한 기득권은 손도 못대게 하면서 입만 열면 기득권 타파와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것이야말로 ‘유체이탈’ 아니냐”고 꼬집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부처간 비협조와 관료들의 저항, 청와대 참모들의 무능력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방재정 전공 교수는 “재정분권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에 기대를 접었다는 전문가들이 주변에 많다”면서 “나 역시 재정분권 개혁은 실패했다고 본다. 이미 경기는 끝났다. 매우, 매우 슬프다”고 털어놨다. 다른 학자는 “애초에 TF에 떠넘길 게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개혁의 틀을 만들었어야 했다”면서 “재정분권 개혁은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닌 싶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선 자칫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을 국정핵심과제로 선정하고 복지 분권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충분한 재원 보장도 없이 13개 부처 149개 9581억원 규모 국가사무를 지자체로 이관하는 바람에 지방재정 부담만 키웠다.



“日 재정분권 원동력은 총리의 명확한 지시…文대통령 직접 나서 관료집단 저항 맞서야”

국중호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재정분권 추진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료 집단의 저항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 교수는 2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재정분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직접 나서서 정부 부처에 명확한 지시를 내리고 한계선을 정해 줬기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국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지방재정제도를 비교한 ‘한국의 재정과 지방재정’을 저술하는 등 오랫동안 한·일 재정제도를 연구해 왔다.

국 교수는 일본 지방자치의 원동력은 지역성에 기반을 둔 탄탄한 세입, 자율성과 책임성을 살리는 재정 운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 지방자치단체의 불확실한 세입 기반이 지방자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면서 “일본의 ‘삼위일체’ 개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이 2000년대 초반 시행한 삼위일체 개혁은 지방세와 지방교부세, 국고보조사업을 종합 조정하는 재정분권 방식이었다.

국 교수에 따르면 삼위일체 개혁의 핵심은 중앙정부의 간섭을 줄이고 지자체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것이다. 특히 국세인 소득세를 줄이는 대신 지방세인 주민세(우리나라 지방소득세에 해당) 세율을 10%로 올린 덕분에 국세와 지방세 비중을 7대3에서 6대4 비율로 개선했다. 대신 지자체는 국고보조사업 축소를 감수했다.

국 교수는 한국에서는 지방자치 실시 이후에도 지방세 비중은 늘어나지 않고 여전히 국고보조금이나 교부세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만 봐도 지방자치가 미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재정분권은 중앙에서 지방으로 권한과 재원을 나눠 줘 지자체의 책임성과 자율성을 높이자는 취지”라면서 “지자체가 재정을 중앙정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주민이 아닌 중앙정부 눈치를 더 봐야 하는데 이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 교수는 “일본 지방자치에서 가장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우리 동네 재정은 우리가 책임진다’는 자세”라면서 “연방제가 아니고서야 지방세 세입만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는 지자체가 전 세계에 얼마나 되겠느냐. 중앙정부가 지자체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지자체 역시 재정 운용에서 책임감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식 삼위일체 개혁에 더해 지방교육재정을 지방재정과 통합하는 ‘사위일체’ 개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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