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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

[동북아경제지도(1)] 북-중-러 만나는 곳에서 생각하는 평화와 번영

by betulo 2018.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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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천이란 곳을 아십니까? 어떤 분들은 대구 방천시장과 김광석을 떠올릴겁니다. 현재 속에서 김광석이라는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공간이지요. 하지만 현실 속에서도 다른 시간에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중국어 발음으로 팡촨(防川)이라고도 하는 곳입니다. 


방천이란 곳을 처음 알게 된 건 순전히 제 취미생활인 지도 들여다보기 덕분입니다. 압록강 두만강 하구를 구글지도로 훑어보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세 나라가 만나는 접경에 눈길이 갔습니다. 중국이 그곳에 관광지를 조성했다는 것도 구글지도로 알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저는 방천에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심이 났습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진다!



언론진흥재단에서 시행하는 기획취재지원사업에 <남북경협을 넘어, 새로 그리는 동북아 경제지도>란 기획안을 냈는데 덜컥 선정이 됐습니다. 그걸 노잣돈 삼아 압록강 하구와 두만강 하구, 북중접경지역을 취재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방문할 곳 목록을 써 봤습니다. 황금평, 비단섬, 위화도, 조중우의교, 신압록강대교, 수풍댐, 그리고 신의주. 물론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겠지만 그게 어디입니까. 그리고 방천!


방천전망대는 6월 28일 방문했습니다.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일단 6월 27일 연변조선족자치주 일대에 상당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방천 주변은 침수도 잘 되고 해서 비가 많이 오면 아예 출입을 제한하기도 한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27일 단둥에서 훈춘까지 가는 고속철도를 타고 대여섯 시간이 걸려 훈춘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훈춘에서 방천은 약 65km입니다만 도로 사정이 썩 좋진 않아 1시간 30분 가량 걸립니다. 물론 중간에 검문에 걸리지 않을 때 얘기지요. 검문소에서 아니나 다를까 붙잡혔습니다. 앳된 얼굴을 하고 소총과 방탄조끼까지 한 군인들이 여권을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여권 사진도 찍고 무전으로 확인도 하고 하느라 20분 가량 걸렸습니다. 다른 차는 그냥 지나가는데 외국인인건 어떻게 알아냈나 모를 일입니다. 


검문소를 지날 때쯤부턴 정말이지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면 두만강 푸른물이 보입니다. 왼쪽엔 원시림이 펼쳐지고 경계표시를 위한 철조망이 있는데 철조망 너머는 러시아입니다. '방천풍경구(防川风景区)'라고 돼 있는 곳에 도착해서 전망대로 가는 셔틀버스에 옮겨탔는데 중간에 검문을 해서 외국인들은 내리라고 합니다. 중러 국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외국인 사절이랍니다. 외국인은 북중러 국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만 가능합니다. 사실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북중러 접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11층에 올라갔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두만강과 두만강철교, 라선특별시, 러시아 하산, 그리고 동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두만강 하구 퇴적층이라 그런지 높은 산이 없고 끝없이 밀림이 이어지는게 놀랍기만 했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다가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방천 전망대에 서 있는 저는 오후 1시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오른쪽 두만강 너머 라선특별시에선 오후 2시입니다. 그나마 4월까지 1시30분이다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2시로 되돌아왔습니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면 오후 3시입니다. 제 휴대전화는 시차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자꾸 평양 시차로 보여줍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방천은 서울이나 평양보다도 더 동쪽입니다.



같은 위도에 위치해 있는데도, 그리고 몇걸음 차이로 오후 1시와 2시, 3시에 동시에 위치하게 됩니다. 동시간대에 있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에 위치하는 기묘한 역설. 그것이 바로 동북아시아가 처한 현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중국으로선 15km 바로 앞에 동해가 있는데 연해주가 러시아 차지라 동해로 나가는 출구가 없습니다. 방천 전망대 1층 전시실에는 동해로 나가고 싶어하는 중국의 열망과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로 가득합니다. 러시아는 중국을 경계합니다. 하산은 어지간해선 외국인 출입을 금지합니다. 


생각해보면 라선특별시의 가치를 처음 알아본 건 일본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는 독립행정기관인 라진청을 설립하려 했습니다. 이후 북한은 라진과 선봉을 묶어 라선특별시를 만들며 라선을 북중러 삼각경제협력의 중심축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게 꽤나 답답합니다. 박근혜 정부는 나진-하산 철로연결사업에 참여했지만 개성공단과 함께 중단해 버렸습니다. 


20세기 전반기 동북아 경제지도는 일본이 주도한, 침략과 수탈의 현장이었습니다. 21세기 전반기 동북아 경제지도는 평화와 번영의 현장이 될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리 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다음번엔 두만강을 건너 하산으로 간 다음 방천을 방문해보길 기대합니다. 



임강택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말하는 동북아경제지도를 위한 고민꺼리들. 

임 연구위원은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에 참여하는 등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온 학자다. 그한테서 들은 여러가지 얘기 가운데 동북아경제지도 구상과 관련한 얘기들을 요약해서 발췌해본다. 


북한과의 협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게 핵심이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남북협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압록강·두만강 하구의 중요성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북중경협의 70% 가량이 신의주-단둥에서 이뤄진다. 두만강 하구는 아직까진 취약하다. 정치 바람에 취약하고 북중러 협력틀도 취약하다. 단둥은 열려 있는 공간인 반면 연변은 말 그대로 변경이다. 배후지가 있느냐 여부도 큰 차이다. 연변이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발전속도는 단둥보다 확실히 늦다. 단둥은 돈이 많이 굴러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단둥은 관광도 꽤 성행한다. 그게 대부분 북한관광이다. 그에 비해 연변은 백두산 가기 위해 잠깐 들르는 정도다. 연변을 중심으로 한 경제협력에서 관건은 현지 조선족의 마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 조선족과 동반자 관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족을 미래 협력 파트너로 생각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주장했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북핵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게 결정적인 약점이었다. 더구나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으며, 그게 안되면 물리적인 수단도 불사하겠다는 접근법이었다. 북한 입장에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었다. 오히려 지금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주목할 수 있는 국면이다. 문재인 정부는 절실함에서 시작한 정권이다. 그래서 대북정책의 성과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다. 전쟁만은 안된다는 데서 출발했으니까 일단 총을 내려놓고 같이 잘 살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다. 그 절박함에 과거 정부 20년의 시행착오를 복기한게 도움이 됐다고 본다. 문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을 거치면서 북한의 변화상을 우리가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퍼주기 논란, 불신, 붕괴론 등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 비핵화 이후를 고민할 준비가 우리 스스로 제대로 돼 있는지 의문이다. 


북한을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동반자로 세우는 것이 관건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북한을 동반자로 대해야 한다. 오히려 문제는 한국이 그럴 준비가 돼 있는가 하는거다. 북한 개방되면 떼돈벌 것처럼 떠드는데 북한에서 보기에 얼마나 한심할까 싶다. 북한은 자기들 방식으로 개방할 것이다. 그때가서 우리가 원하는 방식 아니라고 북한 욕해봐야 소용없다. 그때쯤이면 앙꼬는 중국에서 다 가져갈 수도 있다. 중국은 10년 넘게 준비를 했다. 우리는 10년을 허송세월보냈다.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2018/08/01 - [동북아경제지도(2)] 중국은 잰걸음 한국은 게걸음

2018/08/02 - [동북아경제지도(3)] 북한, 국가주도 시장화로 경제개발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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