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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2 07:30

[동북아경제지도(3)] 북한, 국가주도 시장화로 경제개발 박차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만나는 접경에선 세가지 다른 시간대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중국 기준으론 오후 2시인데 북한 기준으론 오후 3시, 러시아 기준으론 오후 4시다. 그나마 북한은 2시30분이다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2시로 되돌아왔다. 냉전의 지정학에서 두만강 하구는 북중러에서 가장 외진 곳이 만나는 변경에 불과하다. 갈등의 지정학에서 두만강 하구는 화약고 그 자체다. 하지만 지정학으로 틀을 갈등에서 화해로 바꾸기만 하면 두만강 하구는 ‘뉴 프런티어’가 될 수 있다. 북중무역의 현장에 그쳤던 압록강 하구 역시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과거 일본이 추진했던 침략과 수탈의 동북아경제지도에서 이제는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동북아경제지도로 바뀌는 격변의 흐름을 취재했다.




 중국 단둥시 중심가에 위치한 류경식당에서는 저녁 6시30분이 되자 종업원들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은 시작과 마무리만 북한 노래이고 나머지 5곡은 모두 중국 노래다. 식당을 채운 손님 30여명 가운데 2명을 빼곤 모두 중국인이어서다. 음식과 공연 모두 중국 손님 취향에 맞춘 이유는 딱 하나,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사회주의 모자를 쓴 북한식 ‘주체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여준다.


 북한을 빼놓고는 ‘동북아 경제지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북경협은 개성, 북중경협은 신의주, 북중러경협은 라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거부하면 한국은 대륙으로 갈 수 없고, 중국은 동해로 나올 수 없다. 북한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북한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입지를 디딤돌 삼아 동북아 경제지도의 중심이 되려 한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인 사업가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현재 북한의 모습은 딱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산업화 시기 한반도 남쪽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국가가 나서서 경제발전을 독려하고 외국으로 광부와 간호사, 건설노동자를 보내던 걸 2018년 한반도 북쪽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은 대북제재 와중에도 여전히 중국 곳곳에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북중접경지역에서 10년 넘게 북한 관련 연구를 하는 남모씨는 “훈춘이나 도문에 있는 공장에선 지금도 북한 노동자 수천명이 기숙사형 공장에서 일한다”면서 “매일 자체적으로 자아비판과 사업평가로 이뤄지는 ‘총화’를 하고 그 결과를 대사관이 보고 받는다. 철저하게 북한 당국 관리하에 파견노동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단둥 현지조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문화인류학자인 강주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단둥에 나와있는 북한노동자는 2만명 규모”라고 밝혔다.


 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일을 잘하는데다 성실하기 때문이다. 남씨는 “훈춘에 있는 한 중국 식당이 중국인 종업원 8명을 쓰다가 북한 종업원 4명으로 바꿨는데 일을 더 잘한다고 칭찬하는 걸 들었다”면서 “중국만 해도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의류를 생산하는 북한 공장과 거래하는게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북한 공장에 200명이 일하는데, 500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면서 “북한 공장을 방문해보니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7시부터 11시까지 일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북한식 발전국가’로 표현했다. 그는 “1990년대엔 자생적으로 시장이 발생했다면 지금은 국가 스스로 계획경제 안에서 시장을 포괄하려 한다”면서 “한마디로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화’다. 시장이 발달하면 북한 체제 붕괴될 거라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응구 베이징대 조선문화연구소 명예소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박봉주 총리에게 경제정책을 일임한 뒤 젊고 해외를 아는 240명을 모아 연구팀을 꾸렸다”면서 “이들은 수년 동안 한국, 중국, 미국을 연구한다. 북한은 지금 이들이 세운 경제개발계획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중경협 핵심지역으로 다시 떠오른 황금평 전경. 오른편에 최근 설치된 ‘황금평 경제구’ 간판이 보인다. 황금평은 압록강 하구에 퇴적층이 쌓인 하중도(河中島)로 중국 쪽은 걸어서도 건널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깝다. 황금평은 1962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체결한 ‘조중 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따라 정식 북한 영토로 인정받았다. 이 조약에 따라 북한은 백두산 천지의 54.5%,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과 모래톱 중 264개를, 중국은 천지의 45.5%, 섬과 모래톱 187개를 차지했다.

압록강 중류에 위치한 수풍댐. 일제시대만 해도 한반도 전역에 전기를 공급했다. 지금은 북중이 공동이용한다.

수풍댐 옆 북한마을 모습.



 북한의 변화상은 북한에서 온 보따리상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전, 훈춘에 있는 한 세관 앞에서 북한에서 온 보따리상 일행 5명과 조심스레 대화를 나눴다. 함경북도에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들은 50대에서 70대 여성들이었다. 훈춘에 있는 친척 방문 목적으로 정식 도강증을 발급받아 1개월을 체류한 뒤 귀국하기 위해 세관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  함경북도에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들은 50대에서 70대 여성들이었다. 훈춘에 있는 친척 방문 목적으로 정식 도강증을 발급받아 1개월을 체류한 뒤 귀국하기 위해 세관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현재 동네에서 인민반장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경험이 있었다. 두 명은 자식이 군복무중이었고 한 명은 남편이 공무원이었다.


 “중국이 우리한테 이럴 수 있느냐. 해도 해도 너무한다.”


 이들은 모두 화가 나 있었다. “친척들이 조금씩 생활에 보태라고 옷이며 각종 물건들을 줬는데 세관에서 못가져가게 막는다”면서 “중국이 미제 승냥이들한테 머리를 팍 숙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여기 올때 버섯, 고사리, 다시마, 까나리, 젖은 물고기를 가져왔는데 세관에서 못가져가게 해서 다 두고 왔다. 귀국할때 찾아가라고 하더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이번에는 우산이나 옷걸이조차도 ‘쇠붙이라 안된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B씨는 “난 원래 훈춘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때 아버지 등에 업혀서 조선으로 넘어왔다”면서 “당시만 해도 조선족들은 물론이고 한족들까지 두만강 건너와 쌀이며 옷, 숟가락 젓가락까지 얻어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는 그때 하나라도 더 쥐여주며 정성으로 보살펴줬다”면서 “중국이 이제 좀 잘살게 됐다고 우리를 이렇게 괄시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세관에 신고하기 위해 적은 물품 명세서를 살펴봤다. 겨울옷, 바지, 속옷, 와이셔츠, 아동복, 사탕, 쌀, 담요, 가루비누, 맥주, 자전거, 우산, 옷걸이 등 일상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처음에는 “돈벌러 여기 온거 아니다. 친척방문으로, 유람온 것”이라고 말했지만 얘기도 길어지고, 준비한 빵과 물을 함께 나누면서 조금씩 솔직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이들과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누면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행동거지가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다는 점이었다. 말투를 듣더니 대뜸 “남쪽에서 왔습니까?”라고 묻더니 “연길에서 왔다. 사업차 이남을 많이 다녀와서 그렇다”고 둘러대자 더 묻지도 않았다. 크게 개의치 않는 느낌이었다. 시골 할머니들한테 느껴지는 순박함도 컸지만 세상 돌아가는 소식도 얼추 파악하고 있다는 것도 분명했다. “정상회담 장면을 생중계로 보는데 눈물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 부모가 함흥사람이라더라”며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 기근 사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래 북한 각지에서 활발하게 생긴 장마당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C씨는 중국과 북한 장마당을 비교했다. “중국 장마당은 너무 지저분합니다. 우린 여기처럼 질서없게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한군데 정해놓고 거기서 장사합니다.” C씨는 이어 “학생들은 장마당 출입금지다. 공부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관공서의 통제를 벗어난 장마당이 아닌, 당국이 관리하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북한 경제상황이 좋아졌다는 것도 이들과 대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D씨는 “요즘은 인구가 많아지니까 새 집을 많이 짓는다”고 했다. A씨는 “여기가 쌀값이 우리보다 비싸다. 우리 동네에선 중국돈으로 3위안이면 쌀 1㎏을 살 수 있다”면서 “요새 새 옷이 유행이다. 헌 옷은 장마당에서 아무도 사질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돈 100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12만 5000원 가량”이라면서 “그걸로는 네 식구 먹고 살기 힘들다. 200위안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급으로 받는 쌀은 실제 먹는 쌀 절반 가량 된다”면서 “먹고 살려면 늙은이들도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장사해서 벌어먹을 수 있게 풀어놨다. 사고 팔고 하는건 된다”고 했다. 이들이 친척방문으로 중국에 와서 각종 물건을 고향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건 말 그대로 “살림살이에 보태려는” 의도였다. E씨는 자신이 “집에서 재봉틀로 재단을 한다”고 했다. 가내수공업으로 옷을 생산해서 파는 셈이다. 이들은 세관을 통과하면 친척들이 차를 가지고 마중나올 거라고 했다. 이들은 세관에서 트럭에 실어놓은 물건을 모두 풀어놓고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저녁 무렵 이들 가운데 두 명을 다시 만났다. “통관 절차는 어떻게 됐느냐”고 묻자 트럭 맨 위에 있는 물건 몇 개만 빼고는 다 통과시켜줬다고 했다. “유엔제재 때문에 못살겠다”던 표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하룻밤만 지나면 “나그네와 애들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함경도에선 남편을 나그네라고 부른다”고 일러줬다. 대화의 결론은 언제나 자식자랑인건 남이나 북이나 다를게 없었다. C씨는 “아들이 군대가서 평양에서 근무한다”면서 “복무를 잘해서 상급자들 평가가 좋다. 내년에 제대하고 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고 대북제재를 겪으면서도 이들은 낙천적이었다. D씨는 “몇 년만 지나면 우리 조선이 잘 살게 것”이라면서 “지하자원도 많고, 한다고 결심하면 일치단결해서 해내는 인민들 아니냐”고 했다. 이어 “함경북도엔 유명한 온천이 여럿 있다”면서 “통일되면 놀러오시라요”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신의주와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도시다. 두 도시를 잇는 조중우의교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트럭과 관광버스가 아침저녁으로 오간다. 신의주는 최근 고층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황금평과 함께 북·중 경제협력 주요 무대로 주목받는 위화도 일대 모습. 압록강을 사이에 둔 약 12㎢ 면적의 위화도는 최근 대규모 투자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과 중국은 생각보다 훨씬 가깝게 붙어 있다. 사진 왼편 마을은 중국 단둥, 오른편 농토는 북한 어적도(於赤島)다. 아래쪽에 한걸음이면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뜻을 지닌 일보과(一歩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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