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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1 18:00

[동북아경제지도(2)] 중국은 잰걸음 한국은 게걸음

 북한, 중국, 러시아 세 나라가 만나는 접경에선 세가지 다른 시간대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중국 기준으론 오후 2시인데 북한 기준으론 오후 3시, 러시아 기준으론 오후 4시다. 그나마 북한은 2시30분이다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2시로 되돌아왔다. 냉전의 지정학에서 두만강 하구는 북중러에서 가장 외진 곳이 만나는 변경에 불과하다. 갈등의 지정학에서 두만강 하구는 화약고 그 자체다. 하지만 지정학으로 틀을 갈등에서 화해로 바꾸기만 하면 두만강 하구는 ‘뉴 프런티어’가 될 수 있다. 북중무역의 현장에 그쳤던 압록강 하구 역시 새로운 기회를 맞을 수 있다. 과거 일본이 추진했던 침략과 수탈의 동북아경제지도에서 이제는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의 동북아경제지도로 바뀌는 격변의 흐름을 취재했다.


 “방금 지나간 아가씨 가슴 봤습니까?”


 중국 단둥세관 앞을 지날 때 동행한 장필수(가명)씨가 대뜸 기자에게 “얼굴만 보면 안됩니다. 가슴을 눈여겨 보셔야죠”라고 나직이 속삭였다.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싶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 가슴을 보고서야 이해가 됐다. 모두들 김일성·김정일 뱃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


 단둥에서는 북한 노동자들과 마주치는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거기다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과 북한에서 태어난 화교까지 다섯가지 다른듯 같은 정체성이 뒤섞인다. 대북무역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단둥에 정착한지 15년을 바라보는 장씨 역시 부인은 중국인이다.


 지난 6월 24일부터 27일까지 중국 단둥을, 28일부터 7월 2일까진 연변조선족자치주를 방문했다. 취재하는 동안 대북제재로 인한 긴장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단둥세관 바로 옆 가게에 들어갔다. 중국어로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점원에게 “담배 있습니까”라고 하자 대뜸 “조선 담배만 있습니다”며 칠성 담배를 내놓는다. 


단둥세관 주변에선 북한으로 돌아가기 전에 옷이며 각종 물건을 사는 북한 노동자들로 붐빈다. 특히 전기밥솥과 제면기 등 주방용품은 최고 인기상품이다. 단둥세관은 북한을 오가는 트럭들도 붐볐다. 장씨는 “중국이 무슨 제재를 한다고 하면 그 전날은 차량이 더 붐볐다. 차선 두 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단둥세관에 오려면 압록강 하구에 자리잡은 ‘조중우의교’를 지나야 한다. 이름 그대로 ‘조선과 중국의 우정’을 상징하며 신의주와 단둥을 잇는 다리다. 최근 세 차례 북중정상회담 이후에도 공식적으론 대북제재가 계속되지만 현장에선 분명한 변화가 감지된다. 조중우의교를 지난 북한 차량이 옮겨온 북한 물품은 단둥세관을 거쳐 중국 각지로 퍼져 나간다. 세관에서 후아위안루(花園路)에 있는 보세창고로 가는 물품은 해외로 팔려간다. 단둥세관에는 관광버스가 북적이고 있었다. 한 관광객에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후베이성 우한시”라고 답한다. 당일치기 신의주·라선 관광상품은 예약이 넘쳐난다.


신의주와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도시다. 두 도시를 잇는 조중우의교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트럭과 관광버스가 아침저녁으로 오간다. 신의주는 최근 고층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조중우의교를 건너 중국으로 온 북한 화물트럭이 단둥세관에서 나와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단둥 시내에선 ‘평북’ 번호판을 단 트럭을 손쉽게 볼 수 있다. 단둥과 평양을 오가는 택배도 활발하다.


 단둥에서 황해 쪽으로 차를 타고 가면 거대한 규모의 단둥 신도시가 눈에 들어온다. 황금평과 마주보고 있고 신압록강대교와 거대한 세관 건물이 연결돼 있다. 한눈에 봐도 북중무역을 염두에 뒀다는게 분명해 보인다. 


신도시에 거주하는 한국인 정모씨는 “신도시는 건설한 지 몇년 동안 유령도시 소리를 들었지만 북중정상회담과 황금평 특구 개발 소식에 다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단둥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염모씨는 “중국 대기업 자금이 단둥 부동산에 몰리면서 과열 징조가 보이자 단둥시정부에서 최근 미분양 아파트는 5년간 명의이전을 금지한다는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개울 오른편이 북한땅인 황금평이다. 황금평은 압록강 하구에 퇴적층이 쌓인 하중도(河中島)로 중국 쪽은 걸어서도 건널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깝다. 황금평은 1962년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가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체결한 ‘조중 변계조약(朝中邊界條約)’에 따라 정식 북한 영토로 인정받았다. 이 조약에 따라 북한은 백두산 천지의 54.5%, 압록강과 두만강의 섬과 모래톱 중 264개를, 중국은 천지의 45.5%, 섬과 모래톱 187개를 차지했다.  

 북중경협 핵심지역으로 다시 떠오른 황금평 전경. 오른편에 최근 설치된 ‘황금평 경제구’ 간판이 보인다.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신압록강대교 전경. 중국 주도로 건설했지만 북한쪽 연결도로가 개통되지 않아 몇년째 활용을 못하고 있다. 신압록강대교 주변으로 신도시를 조성한 단둥시에선 북중경협이 재개되면 신도시가 활기를 띌 것으로 기대한다.

 중국 단둥시에 설치된 ‘호시무역구’ 정문 앞에 인공기와 오성홍기가 펄럭이고 있다. 호시무역구는 북중 상품교역을 위해 단둥시내에 들어섰지만 중국이 대북제재에 나서면서 현재는 개점휴업 상태다.


 단둥 기업인들 사이에선 중국 대기업 관계자들이 평양을 방문해 알짜배기 사업을 협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중국 전문가인 박종철 경상대 사회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중국 대기업들이 평양을 자주 찾고 있다. 특히 거대 부동산 기업들이 단둥과 훈춘 등에도 대규모 투자를 추진중이다”고 전했다. 윤달생 전 단둥한인회장은 “알고 지내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건설회사는 벌써 북한측과 사업 논의가 한창이다”고 귀띔했다. 단둥만 그런게 아니다. 포스코가 두만강 하구 훈춘에 건설한 대규모 물류창고에서 만난 김성곤 본부장은 “중국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북한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북중경제협력은 중국이 더 적극적이다. 북중간 협력관계는 필수요건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와중에 ‘차이나 패싱’ 논란이 불거지자 예민하게 반응한 것에서 보듯 중국은 ‘동북아 경제지도’의 ‘중심’ 자리를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단둥과 마주보는 황금평과 비단섬, 연길·훈춘과 맞닿은 나선 낙후된 동북3성 경제발전을 위한 신천지나 다름없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강력한 대북제재를 했지만 정작 북한은 수입다변화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협력으로 북한과 연결고리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 대학 교수는 “한국에선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일종의 갑을관계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다. 북한은 중국이 좋아할만한 걸 발표할때만 중국에 미리 알려주고 중국이 싫어할만한 걸 발표할땐 귀띔도 안해준다”고 말했다. 북중경협 상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를 “북한과 중국은 같이 피를 흘리며 싸운 관계가 틀림없다. 하지만 혈맹은 혈맹이고 국익은 국익이다”고 표현했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이 잰걸음인 반면 단둥·연변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양씨는 “단둥이 대북교역의 핵심 거점이라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대북 임가공무역의 기본 시스템을 만든게 한국 기업들이란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단둥한인회 관계자는 “한창 많을 때는 단둥에 한국인이 5000여명 있었는데 지금은 1000명도 안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북한과 중국 관계자들이 만나는 걸 알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모씨는 1996년부터 대북사업을 시작한 대북사업의 산증인이다. 그는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시작한 뒤 대북사업에 뛰어든게 1세대, 대체로 김대중 정부 이후가 2세대”라면서 “금괴와 골동품으로 시작해 2세대부터 의류와 신발, 전자제품 임가공, 수산물로 확장됐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론 조선노동당 외곽조직인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단둥대표부를 통해 주문과 결제가 이뤄졌지만 실제로는 남북기업간 직거래가 많았다. 그는 “단둥을 중심으로 북한 노동력을 활용한 임가공무역 체제를 만들고 발전시킨게 한국 기업들”이라면서 “개성공단 모델은 사실 단둥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말했다.


 김씨 인생을 계절로 표현하면 2010년 5월 24일까진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리고 느닷없이 겨울이 시작됐다. 처음엔 금방 해제될 줄 알았다. 그는 “설마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정부에서 대책없이 한국 기업들 길바닥에 나앉게 할까 싶었다”면서 “정부에 물어봐도 금방 풀린다는 얘기만 들었다. 총선 지나면 풀린다, 대선 지나면 풀린다 하다가 8년이나 지나버렸다. 차라리 그때 바로 사업을 접었으면 손해라도 덜 봤을텐데”라고 말했다.


 5·24 이후 단둥에서 활동하던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김씨는 “친구는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겼는데 8개월만에 50억원 넘게 손해를 보고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피해보상이라도 받았지만 우리는 그것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고 말했다. 10년 넘게 한국 기업들이 쌓은 노하우는 고스란히 중국 업체들이 이어받았다. 김씨는 “5·24조치는 대북 현금거래를 차단하려 했다. 그 결과 대북 임가공 무역이 괴멸됐다. 북한은 거래처를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꿔버렸다”면서 “결국 5·24조치로 이득 본 건 중국밖에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석모씨는 한족 출신으로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다. 빈손으로 중국에 건너온 그가 취직한 회사 사장이 바로 김씨였다. 5·24조치 이후 석씨는 창업을 했다. 이씨한테서 전수받은 인맥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벌여나갔다. 몇 년 뒤 그는 김씨에게 “외제차를 새로 장만했는데 시승식을 하러 오시라”고 초청할 정도가 됐다. 그는 요즘 연길에서 북한에 자가용을 수출하는 사업을 한다. 훈춘에서 만난 의류공장 사장 중국인 황씨는 석씨를 통해 의류 하청을 받아 북한으로 원자재를 보낸다. 북한에서 생산했다는 옷을 살펴보니 ‘Made in China’라고 써 있다. 모두 유럽으로 수출한다고 했다.


 대북사업가 이종근씨 역시 5·24조치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LG상사에서 1989년 만든 북한과 과장을 맡으면서 대북사업에 발을 들인 그는 2008년 대북무역업체를 창업했다. 그는 최근 대북무역 문의를 많이 받지만 “개성공단으로 알아보라고 조언해준다. 거긴 정부가 책임지고 운영할테니까”라고 전했다. 강주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5·24조치 이후 피해를 본 한국 기업체는 대략 1200곳이다.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업체보다 10배가량 많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5·24 이후 대북사업은 중국 기업들이 독차지했다. 그들이 지난 8년간 쌓은 경험과 인맥이 만만치 않다”면서 “앞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북한을 향해서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읍소하지 않으면 중국 기업과 경쟁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한국 기업들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도록 보험이나 중재, 결제같은 것들을 남북 정부가 빨리 협의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우리 기업인들이 북한과 접촉할 수 있도록 5·24조치 폐기를 선언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중국 좋은 일만 시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둥시내 전경.

 신의주와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쌍둥이 도시다. 두 도시를 잇는 조중우의교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화물트럭과 관광버스가 아침저녁으로 오간다. 신의주는 최근 고층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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