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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통일비용, 그 허와 실

by betulo 2018.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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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와 평화협력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통일비용 논의도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등에서 경쟁적으로 통일비용 전망치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통일비용 논의는 연구에 직접 참여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무엇보다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만 과장하게 만드는 데다, 대부분 북한붕괴와 흡수통일을 가정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사건’이 아니라 ‘과정’으로 인식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13일(현지시간) 영국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와 공동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비핵화 보상만 해도 2조 달러(약 2100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2018년도 우리나라 예산규모인 428조 8000억원의 5배 가까운 액수다. 영국 헤지펀드인 유리존 SLJ는 지난 10일 한반도 평화 정착에 필요한 비용이 향후 10년간 1조 7000억 유로(약 216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존 통일 비용 추정은 연구방법과 통일시점 등 변수에 따라 최소 500억달러부터 최대 5조 달러까지 100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가령 미국 랜드연구소(2005년)는 통일 뒤 북한 경제가 두배로 늘어나는 것을 전제로 500억 달러(약 53조원)를 통일비용으로 추산한 반면, 피터 벡 전 국제위기감시기구 동북아 사무소장(2010년)은 북한이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80% 수준에 도달하는 시점까지 비용을 계상해 5조 달러(약 5300조원)를 통일비용으로 잡았다. 


통일의 형태와 방법, 목표 수준과 비용부담 주체 등 전제조건이 제각각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통일비용을 계산하는 방식 자체가 특정 시점에 통일이 됐다고 가정한 다음 비용을 계산한다는 점이다. 독일식 흡수통일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이는 6·15와 10·4는 물론 최근 4·27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내용과도 정면으로 배치되는데다 현실성도 없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마치 선택하는 자동차에 따라 구입비용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처럼 통일비용 역시 정해진 개념 자체가 없다”면서 “나도 (통일비용 연구를 하면서) 독일방식으로 비용을 추산했지만 그런 식으론 통일이 돼서도 안되고 감당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방송에서 통일비용을 처음 발표한 게 일본이었다면서 “일본이 남북한의 통일 비용을 계산하면서 현재 한국의 재력으로는 1년 예산을 북쪽으로 퍼부어야 하는데 감당할 수 없다. 통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통일을 ‘비용’으로만 따지다 보면 과도한 국방비 부담과 사회갈등, 이산가족 문제 등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분단비용’을 등한시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독일처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을 통일 이후 1% 포인트만 줄이고, 국가위험도 감소에 따른 외채 상환이자 부담만 감소시켜도 수백조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일 과정에서 남북 경협을 통한 시너지 효과도 만만치 않다. 북한에 철도를 건설하면 남과 북 모두 사용할 수 있고 함께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접근방식이라면 한반도 경제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성공단을 통한 생산유발효과와 부가가치 창출, 금강산 등 관광자원 활용에 따른 수익 증대, 희토류 등 지하자원개발 등 역시 막대한 경제적 편익을 보장한다. 황금평·비단섬 등 압록강 하구와 나선 등 두만강하구 개발은 특히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한 보고서에서 북한이 한국의 1960~70년대처럼 연평균 9% 가량 급격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통일비용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변수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성장할수록 비용은 줄어들고 편익은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게 비용도 적게 들고, 남북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지름길인 셈이다. 조 연구위원은 “개성공단을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투자로 생각하는 것처럼 통일비용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남북경제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관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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