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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6 06:30

순진하거나 나쁘거나 '고향세' 빛과 그림자


흔히 좋은 의도로 시작한 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얘길 많이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국가정책에서 의도와 결과를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그것보단 좀 더 건조하지만 엉성한 정책설계와 제도적 허점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주목하는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고향세’가 바로 그런 경우다.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을 돕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누구도 없을 것이다. 지방재정 악화와 격차확대라는 해묵은 현실까지 고려하면 ‘고향세’는 지지받을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명분과 달리 고향세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벌써부터 지방재정에 별다른 도움은 안되면서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선거공약을 거쳐 정부정책으로 채택됐다는 점이다.


고향세는 ‘고향 혹은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세금 중 일부를 납부하거나 기부하면 세제혜택을 주는 제도’를 말한다. 엄밀히 말해 세금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용어는 ‘고향사랑기부제도’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국회에는 고향세 관련 법안 10건이 계류중이다. 더불어민주당(김두관, 안호영, 이개호, 전재수, 홍의락)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강효상, 김광림, 박덕흠), 국민의당(주승용, 황주홍)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의원 발의 법안은 고향으로 들어가는 기부금 이전방식에 따라 세액공제와 세입이전으로 나눌 수 있다. 기부금 세액공제는 각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정부가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식이다. 기부금 세입이전 방식은 납세자가 소득세 중 일부를 자신이 지정한 지자체 세입으로 신청하는 방식이다.


 고향세는 원래 일본에서 아베 신조 1차 내각이 2008년 도입한 것이 시초다. 한국에선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최초 제안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이 핵심공약으로 검토하기도 했다. 2016년 비수도권 지자체를 중심으로 고향세 도입 논의가 이어진 끝에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 100대 과제와 자치분권 로드맵에 포함시키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방재정 전문가 10명에게 고향세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대다수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는 고향세 도입을 100대 국정과제와 지방분권 로드맵에 포함시켰고 국회에는 관련 법안 10개가 계류중인 것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분위기다. “고향세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거나 “취지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학술적으로 보나 정책적으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다”(김재훈 서울과기대 행정학과 교수)는 비판이 대표적이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향세 취지 자체는 동의하면서도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고 봤다. 원종학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부문화 확산 차원에선 긍정적이지만 기부액이 기대만큼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홍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국정과제로 채택했다는 걸 감안하면 고향세 도입 찬반보다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는게 더 생산적”이라고 밝혔다. 고향세에 찬성의견을 밝힌 건 신두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뿐이었다. 그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염두에 둔다면 비수도권 발전을 위한 재원확보 측면에서도 중요한 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향세 논의에 비판적인 지방재정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은 지자체 사이에 기부금 모집을 둘러싼 과열경쟁을 일으키는 반면 지역간 재정격차나 재정확대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될 거라는 점이다. 신 연구위원이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지방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을 빼고는 고향세 취지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조차도 고향세가 지방재정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했다. 임성일 한국지방세연구원 초청연구위원은 “실질적 재원확충이나 재정형평성에 도움이 되기는 사실상 무리라고 본다”고 밝혔다.


 국회에 계류된 고향세 법안들은 고향사랑기부제도 활성화하기 위해 기부자에게 답례품 제공과 세액공제 등 혜택을 주는 방안을 거론한다. 하지만 답례품 제공은 자칫 지자체 사이에 과열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미 일본에선 답례품 제공을 둘러싼 잡음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답례품 제공을 법제화하려면 국가나 지자체의 기부금품 모집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원종학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답례품을 둘러싸고 도덕적해이와 지자체-기업간 비리가 발생할 수 있는데다 답례품 경쟁 때문에 지자체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홍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향우회 등을 동원한 기부금 납부 운동이 벌어지거나 지자체 공무원이 기부금 모집을 위해 동원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면서 “고향세를 도입할 때 답례품 제공 금지를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게다가 일본에서 고향납세를 장려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하다보니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절세 수단이 돼 버렸다는 점은 공평과세와 관련해 사회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다. 게다가 기부금에 세액공제를 해주면 정부의 조세수입이 감소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도권 지자체 관계자는 “차라리 세액공제를 해주는 돈을 지자체에 그냥 주는게 낫겠다”고 꼬집었다.


 한국재정학회장을 지낸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방세라는건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자치단체 공공서비스 혜택에 대한 댓가로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혜택을 받는 곳 따로 돈 받는 곳 따로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기부에 세금감면해준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기부를 받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지자체가 과연 재정이 안좋은지도 따져봐야 한다”면서 “그런 지자체는 지방교부세를 상대적으로 더 받는다. 오히려 특·광역시 구청들이 훨씬 재정이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국중호 교수 인터뷰>

 “일본 고향납세제도는 당초 취지는 지역경제 살리기였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세금혜택도 받으면서 맘에 드는 답례품을 싸게 구입하는 수단이 돼 버렸습니다.”


 일본 지방재정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논의중인 고향세(고향사랑기부금)의 모델이 되는 일본 고향납세제도가 실상 매우 문제가 많다”며  “일본이 고향납세제도를 운영하면서 경험하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5일 인터뷰에서 “지난해 기준으로 고향납세액이 전체 지방세입(39조엔)의 0.7%(2844억엔) 정도에 불과하다. 고향납세가 지방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얘기하는 건 실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5년 한 여론조사에선 고향납세를 하는 이유로 69.1%가 ‘답례품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에서 보듯 고향납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답례품이다. 국 교수는 “지자체 사이에 기부금을 더 받기 위한 과열 경쟁이 벌어지면서 전자제품이나 상품권, 보석 같은 고가 답례품까지 등장했다”면서 “결국 일본 정부가 지난 4월 고향납세 금액의 30%가 넘는 답례품을 자제해달라는 지침을 내놓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고향납세자를 유치하기 위해 과도한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했던 사가(佐賀)시와 토스(鳥栖)시가 지난해 각각 5566만엔과 2036만엔에 이르는 적자를 내기도 했다.


 국 교수가 보기에 일본 고향납세제도는 한 지자체가 이익을 보는만큼 다른 지자체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는 “고향사랑기부금을 필요로 하는 곳은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이지만 정작 그런 지자체가 답례품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면서  “고향기부를 더 받아준다는 명목으로 브로커가 활개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애초에 아베 신조 1차내각이 고향납세제도를 도입했던 건 2007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기반인 ‘농촌표’를 고려한 선거전술 차원이었다”고 꼬집었다.




 지방재정 전문가 10인 발언 요약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뭔가 그럴듯해 보이니까 큰 고민 없이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

 

김재훈 서울과학기술대 행정학과 교수

 “거주하는 지자체에 피해를 주면서 고향을 돕는 게 맞는지 의문”


김홍환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답례품 경쟁이 발생할 수 있다. 답례품 제공 금지를 명문화해야”


수도권 지자체 국장급 관계자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 기부금으로 지자체 재정 운용하는 게 말이 되나”


신두섭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

 “재정 어려운 비수도권 지자체엔 재정 확보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

 “지자체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원종학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부문화 확산 차원에선 긍정적이지만 답례품 문제로 왜곡 가능성”


임성일 한국지방세연구원 초청연구위원

 “고향세 통해 지자체 재원을 확대하거나 재정 형평성 도모하는 건 무리”


주만수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취지를 모르겠다. 대다수 지자체엔 효과는 없고 논란만 극심해질 것”


최병호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고향세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다. 고향을 사랑하면 그냥 기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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