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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8 12:55

식량난에 허덕이면 인권도 멀어진다 (2004.10.29)

2004/10/29


 “원하든 그렇지 않든 옳든 그르든 북한 인권문제는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북한 인권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북한 인권 상황 악화 요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화와 인권의 관점”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지난달 14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 인권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합리적인 공론화와 바람직한 해법을 모색하지 않으면 국내외 강경파와 냉전수구언론이 북한인권문제주도권을 계속 갖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창익 국장도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인권이 자주․민주․통일에 복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만사 제쳐놓고 북한 인권만 떠드는 것도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사단법인 좋은벗들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조-중 국경지역에서 수집한 수천명의 증언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2월 <북한식량난과 북한 인권> 보고서를 냈다. 2001년 이후 자료가 부족하고 북한주민이 아닌 탈북자 증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는 분명하지만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북한 인권문제와 식량난의 함수관계”를 중심으로 북한인권문제를 살펴보는 장점이 있다. 다음은 좋은벗들 보고서를 발췌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주)

  

식량난과 북한인권 문제의 함수관계

 

북한인권문제에서 가장 우선해서 이해해야 할 것은 바로 식량난이다. 식량난이 길어질수록 주민들의 인권수준은 그만큼 열악해진다.

 

1990년대 초반 본격화되어 지금까지 계속되는 식량난은 북한 주민들의 기본 생존권은 물론 여타 모든 인권상황을 열악하게 만들었다. 이는 △체제위기감을 느낀 북한정부의 과민반응 △사회간접자본 파괴로 인한 국가시스템 붕괴 △인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생존경쟁에 큰 원인이 있었다.


 1994년경부터 정기적인 배급이 끊기면서 식량난이 가중되고 아사자가 속출하게 되었다. 1997년부터 1998년까지 좋은벗들이 북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식량난 이후 북한 인구의 13%에 이르는 3백만명 이상이 굶주림으로 사망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사망자 가운데 어린이와 노인의 사망률이 73.9%에 이른다.

 

무상치료를 자랑하던 북한의 의료시스템은 식량난 속에서 의약품을 비롯한 물자부족으로 기능이 마비돼 버렸다. 이로써 주민들은 굶주려서 질병에 걸리거나 굶주림으로 질병이 악화되는 악조건에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불안한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식량난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당시 대량아사자 발생이라는 악몽은 외부지원이 없으면 언제든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식량난과 경제적․사회적 권리

 식량난 문제는 대량아사자 문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먹고 살아남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다보니 사회질서는 상당히 흔들리게 됐고 식량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인권문제가 나타나거나 열악해졌다.

 

이동의 자유 제약은 정치적 자유권 제한의 의미보다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 제약의 의미가 컸다. 주민들은 장사를 하거나 식량․약품 등을 구하러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지만 증명서 문제와 열악한 교통수단이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주민들의 대량이동으로 제도를 통한 통제는 무너졌지만 제도는 여전히 살아있어 주민들의 이동권을 계속 침해했던 것이다.

 

개인 경제활동이 생기면서 빚어진 갈등이 경제권 침해로 나타났다. 주민들은 장사를 하고 뙈기밭을 개간하려 하는데 국가에선 이를 통제하려는 과정에서 갈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최근 북한 정부가 개혁정책을 실행하면서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중이다.

 

출신성분에 대한 차별과 여성․아동 인권문제는 식량난 속에서 가장 취약한 소수자 인권의 성격을 갖는다.

 

식량난과 시민․정치적 권리

 식량난으로 인해 주민의 생명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식량이나 최소 자원을 확보한 사람과 그렇지 못하 사람들로 나뉘면서 갈취와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 또 국가가 생존형 범죄와 정치적 범죄를 자의적으로 구분하면서 과도한 처벌이 횡행했다.

 

식량난 이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수준도 더 낮아졌다. 1985년부터 시작된 상호감시제는 자유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할 수 있다. 그러나 주민들 스스로 상호감시에 익숙해지면서 간접화법을 발달시키는 등 심각한 폐해를 일으키진 않았다.

 

식량난으로 체제유지가 불안해지자 당국은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고 상호감시제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졌다. 이전에는 자아비판이나 단순경고로 넘어갔을 언행도 식량난이라는 재난 속에서 ‘정치범’으로 지목되곤 했다. 조사 결과 국가의 처벌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없는 자’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2004년 10월 29일 오전 2시 38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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