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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그럼에도 내가 담뱃값 인상을 찬성하는 이유

by betulo 201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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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으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난데없이 ‘서민증세’란 말이 횡행한다. 다양한 반론이 쏟아진다. 시민단체는 물론 야당에서도 정부 발표를 비판한다.


먼저 몇 가지 쟁점에 대해 정리해보자.

1. 세수 확대 위한 꼼수?

담뱃값 올리는 게 세수확대를 위해서일까? 그건 분명해 보인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에서 설득력을 가지려면 늘어나는 세입을 대폭 건강증진에 써야 앞뒤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정부가 마치 국민건강 핑계 대는 게 짜증 난다는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만약 정부가 국민건강을 그렇게나 염려했다면 담뱃값을 1만원(혹은 9,900원)으로 올린다고 발표했을 것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정부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민건강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카지노와 토토, 로또 등 ‘보이지 않는 세금’인 도박에 대해 중과세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다.



2. 서민 부담만 가중?

담뱃값 인상 때문에 서민부담이 늘어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그 역시 동의한다. 21세기에 담배란 대체로 한 줄기 연기 속에 버거운 일상을 씻어내고 싶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물건이다. 우리 모두 분명히 알고 있다. 박근혜 이하 국무위원을 비롯한 장관급 인사들 중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다는 얘길 들어본 적이 없다.



꼼수 맞다! 하지만...

정부 행태는 분명 비판받아야 한다. 담뱃값 인상은 분명 꼼수다. 현재 시점을 볼 때, 정부예산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복지예산인 데다, 세수결손이 9조 원 가량 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세입을 확보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존재한다. 직접세 올리는 건 자기들이 그동안 해놓은 말과 행동 때문에 쉽지 않다 보니 일단 아쉬운 대로 담뱃값이나 주민세, 자동차세 등에 눈을 돌리는 셈이다.(이명박식 미신경제학 참조)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뱃값 인상을 찬성한다. 담뱃값은 올라야 한다. 자동차세도 더 올라야 하고 주민세도 더 올라야 한다. 물론 소득세와 법인세도 올려야 한다. 특히 종합부동산세와 금융소득종합과세는 대폭 올려야 한다. 거기에 더해, 필요하다면 부가가치세도 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은 부자한테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모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더 거두는 문제다. 


담뱃값을 올리면 정부 세입이 늘어날 수도 있고, 흡연율이 낮아져 세입이 오히려 줄어들 수가 있다. 이건 마치 나막신 파는 아들과 우산 파는 아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어머니 같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담뱃값 올렸는데 흡연율이 낮아지지 않으면 세수가 늘어나니 좋은 일이고, 흡연 인구가 줄어들면 간접적으로라도 건보료 부담 줄어들고 억지로 담배 연기에 노출되지 않아서 좋고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니까 더욱더 좋다.


직접세와 부자 증세 주장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담뱃값 인상에 대한 비판론 가운데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건 간접세가 아니라 직접세 인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증세’가 아니라 '부자증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호응을 얻고 있다. 심지어 부자증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던 어떤 신문은 폭탄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과거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비판하던 세력이 사용했던 ‘세금폭탄’ 이미지를 차용하기도 했다.


어떤 보도를 보니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근본적인 해법"을 주문한다. 근본적인 해법. 그걸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담뱃값이 올라서 관련 세금이 늘어나면 조세부담률도 늘어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복지확대를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늘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서민부담도 늘어나야 한다. 우리에겐 부자증세도 필요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보편증세가 필요하다.(여기)


복지국가는 부자에게만 세금을 많이 걷는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사실은, GDP 대비 전체 사회지출을 국제비교해보면 의외로 북유럽 국가들은 간접세 비중이 매우 높다. 심지어 보통 죄악세라고 부르는 세금도 많이 징수한다. 다시 말해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서 모든 국민을 위해 복지지출을 한다. 그게 바로 '보편복지'의 진정한 맥락이다.


직접세 인상만 강조하는 분들에겐 미안하게도 전체 조세 중에서 직접세 비중이 높은 걸로 치면 오히려 미국이 스웨덴보다 훨씬 낫다.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세입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에 둠으로써 직접세를 늘리는 역사적 경로를 거쳤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은 조세지출까지 포함하면 복지지출 수준이 북유럽 국가에 뒤지지 않는다. 미국은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복지국가'인 셈이다.

 


'보편 증세' 통해 조세 수준 높여야 

최근 연구를 간략히 인용한다면, ‘높은 복지지출 수준이 높은 조세 수준을 요구한다. 그리고 조세수준이 조세구조를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복지지출 수준이 높은 유럽 복지국가들이 간접세 의존도가 높은 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말해 이런 나라에선 조세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 왜 조세수준이 높아야 할까. 바로 세입을 최대한 확보해서 그 돈으로 복지지출을 늘리기 위해서다.


진정 본질적인 문제는 직접세냐 간접세냐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인 ‘선호’를 연대와 평등에 둘 것이냐, 효율성과 경쟁에 둘 것이냐 하는 점이다. 우리가 연대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를 원한다면 어떻게든 조세수준을 높이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복지는 부자한테 뺏은 돈으로 하는 '홍길동' 방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낸 돈으로 우리 모두를 위해 사용하는 '공동구매'이기 때문이다. 


지금 ‘서민 증세’를 무기로 담뱃값이나 주민세 인상조차 못 하는 사회에선 부자 증세도 어림없는 노릇이다. 서민 증세에 동의해주고, 거기서 더 나아가 부자들 세금도 더 늘리자고 요구하는 게 좀 더 미래지향적인 방향이 아닐까? 전략적으로 조세저항하는 것도 필요하고 추가 세입을 어떻게 쓸 것인지 토론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모든 생산적인 논의는 '증세'라는 첫 단추를 꿰어야만 가능하다.


서민증세라는 이유로 담뱃세나 주민세를 거부해버리는 건 부자증세를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로서도 서민증세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세에 대한 실패가 거듭된다면 오히려 만인과 만인이 싸우는 공동체파괴와 정부부채 증가와 긴축에 따른 복지축소로 이어질 것이다. 세금폭탄과 부자감세가 끊임없이 충돌하는 도돌이표에서 탈출해야 한다.


우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먼저 담뱃값리고 '유아교육,보육 완전국가책임제'같은 대선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길이 있다. 반대로, 담뱃값 인상이 왠말이냐고 반대해 세금을 줄이는 것이다. 첫번째는 일단 기분은 나쁠 수 있다. 하지만 두번째 길을 선택하면 '복지'는 완전히 물건너간다. 우리는그렇다 치고, 박근혜 입장에서 어느 쪽이 더 더 무서울지 한 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지난해 세제개편안 논란에서 보듯 서민증세를 비판하는 것은 결국 증세를 거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결과적으로 조세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높이고 감세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하지만 감세정책은 "국가가 사회로부터 세금을 덜 걷는 대신,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개입하지 않을 자율성을 국가에 부여한다(김미경, 2008: 221)"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김미경 논문 다운로드 링크)


내 주장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이렇다.

1.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2. 부자들은 특히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3. 조세지출, 탈세, 조세회피 등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최소화해야 한다.


슬로우뉴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일부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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