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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지방재정

중앙-지방 갑을관계가 낳은 사생아, 지자체 서울사무소

by betulo 2014.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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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 예산배분이 권력집단 의지와 각종 로비, 나눠먹기로 좌지우지된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 통제는 여전하고 자주재원은 부족한데 국고보조사업 증가로 인한 재정압박은 갈수록 심해진다. 유권자들은 지역구 나눠먹기는 비난하면서도 자기 지역에 더 많은 예산을 확보했다는 국회의원과 단체장에겐 지지를 보낸다. 거기다 전체 인구 절반이 몰려있는 수도권은 특산품 판매를 위한 최대 소비시장이다. 이래저래 지자체가 서울을 향해 손길을 벌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낳은 독특한 부산물이 바로 지자체가 운영하는 서울사무소다. 


게다가 요즘에는 주요 정부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세종사무소를 설치하거나 설치하려는 지자체도 있다. 지자체 입장에선 ‘가장 센 시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국회·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가 각각 서울시와 세종시에 자리잡으면서 시댁이 두 곳으로 늘어난 셈이다. 경기 화성시지역발전연구센터에 따르면 서울에는 현재 서울과 세종을 뺀 15개 광역지자체와 54개 기초지자체가 운영하는 서울사무소가 자리잡고 있다. 화성시가 최근 서울사무소 현황을 조사한 이유 역시 설치의 타당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사무소를 두는 가장 큰 이유는 국회와 중앙부처를 대상으로 한 로비와 정보수집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부처에서 내놓는 공모사업이나 정책동향을 발빠르게 확인해 본청에 알리고 민원사항을 중앙부처에 전달한다. 이밖에도 기업유치, 특산품 판매와 홍보, 의전활동, 관광객 유치, 고향 출신 주요인사 관리, 지역구 국회의원과 협력관계 유지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한다. 


 현실적인 우선순위는 지역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전국기초자치단체서울사무소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송우근 경북 경산 서울사무소장은 “경산이나 대구 달성군은 도농복합도시다 보니 예산확보와 농특산품 판매를 모두 중시하지만 경북 영양은 농산물 판매에 치중하는 편이다. 경북 상주는 서울 뿐 아니라 부산에도 사무소를 운영하는데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귀농인구 유치와 홍보를 중시한다”고 소개했다. 거기다 경기 포천, 전남 여수, 경북 영천, 전북 전주 등은 지역 출신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운영과 서울사무소 업무를 병행하기도 한다.


 서울사무소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면 주요 임무를 유추할 수 있다. 대부분 서울사무소는 마포구와 영등포구, 용산구에 몰려있다. 마포구는 정부서울청사와 국회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예산확보와 국비확보(국고보조금, 특별교부세)를 둘 다 중시하는 지자체가 선호한다. 용산구도 마포구와 비슷하지만 교통상황까지 고려한 결과다. 영등포구는 정책동향 파악과 정보수집, 보조금보다는 예산확보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전남 지역이 12곳, 경북 지역이 11곳, 충북 지역이 7곳, 경기 지역 3곳, 강원 지역 2곳 등 지자체 상황에 따라 편차가 크다. 조직형태도 5급 사무관을 소장으로 하면서 평균 5명이 일하는 사업소 형태가 있는 반면 6급 주무관 등 1~2명으로만 구성된 곳도 많다. 사업소 형태는 연간 운영비가 1~2억원 가량이다. 강원도처럼 각 기초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이 파견형태로 강원도가 운영하는 서울사무소에서 공동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사무소에서 일하는 지자체 공무원들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서 객지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일부 수당이나 활동비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공무원들 입장에서 서울사무소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승진 기회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상당수 지자체는 근무평정에 인사가점을 주고, 파견근무를 마친 뒤 본청으로 복귀한 뒤 승진을 시켜주는 곳도 많다. 지난해부터 서울사무소 소장으로 일하는 A씨는 “승진에 대한 암묵적인 언질을 받았다”고 귀띔했다. B씨처럼 “넓은 바닥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포부로 자원하기도한다.


 정반대 사례도있다. 2011년부터 지난 달까지 서울사무소에서 일했던 C씨는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보면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한 경우다. 사무실이라곤 다른 지자체 서울사무소에서 달랑 책상 하나를 빌린 곁방살이였고, 숙소는 따로 빌린 원룸이었다. 원룸임대료와 파견수당 30만원 말고는 아무런 지원이 없어서 교통비와 식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를 자신의 월급에서 충당해야만 했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생활을 하고 돌아왔지만 승진혜택도 받지 못했다. 그는 “그나마 보람이라면 중앙정부에 인맥을 갖게 됐다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털어놨다.


 서울사무소 업무는 결국 사람을 만나는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다. B씨는 “일주일 내내 사람 만나러 다닌다. 출퇴근도 일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앙부처 공무원들 입장에선 서울사무소 관계자들이 썩 반가울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알게모르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고향 출신 공무원들은 최우선 접촉 대상이자 인맥 확대를 위한 교두보 구실을 하게 된다. A씨는 "고향사람이 아무래도 더 신경을 써주는게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B씨는 “향우회나 경조사는 반드시 챙긴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각 부처 돌아다니며 동향을 파악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실과 협력방안을 의논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차 세종청사 이전이 완료되면서 이제 중앙행정기관은 본격적인 세종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지자체 처지에선 서울사무소에 이어 세종사무소를 고민할 필요가 생겼다. 실제 경기 수원시와 충남 당진시는 세종사무소 설치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광역지자체 중에서도 이미 지난해 충북도와 강원도, 제주도가 세종사무소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경북도에서도 세종사무소를 개설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7월 세종시 연기면 주민센터 건물에 세종사무소를 마련했다. 5급 사무관 소장과 직원 3명이 일하지만  스스로 설정하는 주요업무는 ‘연락’ 사무소 구실이다. 이 곳 관계자는 “제주도 입장에서 세종청사는 접근성이 떨어지는게 사실”이라면서 “세종청사를 방문하는 도청 공무원들을 안내하고 자료 출력 등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사무소는 서울사무소만큼 많이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국회와 안행부 관련 업무가 여전히 서울에서 이뤄지는데다 농특산물 판매와 홍보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과 세종 두 곳에 모두 사무소를 둘 수 없다면 서울에 두는게 좋다. 송 소장은 “KTX를 이용하면 경산에서 세종으로 가는 것이, 서울에서 세종으로 가는 것보다 빠르다”면서“현재로선 굳이 세종사무소를 설치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사무소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있다. 서울사무소 관계자 C씨는 “중앙부처를 상대로 한 예산 확보를 제대로 하려면 과 단위 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다수 서울사무소는 한두명이 전부다. 사실상 농특산품 판매와 고향 출신 인사 관리, 의전 지원 정도밖에 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서울사무소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2006년 무렵 경쟁적으로 서울사무소를 개설했다가 적잖이 중도폐지했다는 것도 이런 논란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자체들이 서울사무소를 운영하는 것은 나름대로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충북 충주시(1996년)나 경북 구미시(1997년), 강원 평창군(2000년) 정도를 빼면 대다수 서울사무소가 2006년 이후 문을 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5년에 정부는 지방분권 차원에서 533개 12조 7000억원에 이르는 국고보조금 사업 가운데 9581억원에 해당하는 149개 사업을 지방에 이양했다. 하지만 충분한 예산확보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지역간 복지불균형과 예산부족이라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국고보조사업 증가로 인한 지방재정부담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08년 35조원이었던 국고보조사업 예산은 2012년 약 52조 6000억원으로 연평균 10.7%씩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지자체 전체 예산은 125조원에서 151조원으로 연평균 4.9% 증가에 그쳤다. 이명박 정부 시기 대규모 감세로 인해 국세세입액 중 약 20%가 자동으로 배정되는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도 적잖이 줄었다. 지자체로서는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서울사무소는 자기모순에 빠진 지방재정조정제도와 수도권 집중이 빚어낸 사생아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주목해야 할 곳은 강원도가 운영하는 서울사무소다. 다른 기초단체가 개별 사정에 따라 제각각인 반면 강원도는 2011년부터 각 기초단체 소속 공무원들이 파견 형태로 강원도가 운영하는 서울사무소에서 공동으로 일을 처리한다. 심규호 강원도 서울사무소장은 “지난해부턴 서울사무소가 세종사무소까지 통합관리한다”면서 “전체 규모가 22명이다보니 강원도 차원에서 종합적인 고려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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