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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덫

by betulo 2014.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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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에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모두가 한목소리로 공공기관 개혁을 외친다. 공공기관을 이대로 두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몰아친다. 정복기관 대선개입 문제다 뭐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의제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 ‘방만경영’을 개혁하고 ‘철밥통’을 타파하자고 하는 건 어쨌든 여론의 호응을 기대하기 꽤 괜찮은 카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기관 개혁이 국민들에게도 좋은 일일까. 눈에 보이는게 전부일까. 


  겨울이 되면 여기저기서 연탄을 나누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연탄은 한편으론 저소득층을 상징하고 다른 한편으론 사진찍기 좋은 봉사활동을 상징한다. 하지만 연탄을 주로 소비하는 집단은 저소득층이 아니라 화훼농가와 음식점이라는 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연탄 자체가 거대한 부실 위에서, 정부 표현을 빗대면 ‘혈세를 낭비하는 방만경영 덕분에’ 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정부 잣대만 들이대면 1950년 설립된 대한석탄공사는 메스를 들이대야 할 첫번째 환자라고 해도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석탄공사는 이미 이명박 정부 초창기에도 완전 자본잠식상태였다. 2008년 말 기준으로 1조 3760억원이었던 부채는 2013년 상반기에 1조 5144억원을 넘어섰다. 1000억원 가까운 당기순손실이 해마다 발생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지난해 펴낸 예비심사검토보고서는 “부채가 계속 증가하고 자산보다 부채의 증가규모가 커서 자본잠식 상태가 점점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대규모 정부지원 없이는 경영정상화가 불가능할 정도인데도 석탄공사 경영실태는 말 그대로 막장 수준이다. 감사원 지적사항을 보면, 법인카드를 사사로이 쓰거나 카드깡을 하는 건 기본이다. 한국노총 전국광산노조연맹 위원장과 석탄공사 노조위원장은 친형제로서 20년 넘게 재임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경영진보다 더한 권세를 휘둘렀다. 두 형제는 지금도 노조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으니 “귀족노조”도 이런 귀족노조가 없다. 


석탄공사 대차대조표 (출처: 알리오)


  석탄을 캐는 광부보다 관리직이 더 많은 것에서 보듯 석탄공사가 문제가 많은 조직이라는 걸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더 큰 부실 원인은 1989년부터 정부가 추진중인 석탄산업합리화정책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과 생산량 감축, 진폐증 보상을 위한 산업재해보험료 급증, 가격통제로 인해 원가의 절반도 안되는 연탄판매가격 등에서 찾아야 한다. 거기다 공사 창립 이래 예외없이 이어진 낙하산을 내려보낸 곳은 바로 ‘정부’였다. 


  태백에서 지역운동을 하는 원기준 목사(사랑의연탄나눔운동 사무총장)는 석탄을 생산할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를 지적한다. 그는 "연탄가격은 373원인데 원가는 800원 수준이다. 정부보조금은 원가보전에 모자란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연탄값 안정을 명분으로 석탄과 연탄의 최고판매가격을 고시한다. 탄광업체가 연탄회사에 석탄을 팔 때 최고판매가격은 1톤당 14만원 선이다. 석탄공사의 생산단가는 20만원 가량이다. 


원 목사는 "석탄공사는 활로를 찾을 기회를 놓친 측면과 정부지원에 안주한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현직 기관장은 역사상 처음으로 공사 출신 인사”라면서 “이제는 더 빨아먹을 단물도 없으니 낙하산으로 오겠다는 사람도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서는 정부정책이 석탄공사 경영부실에 차지하는 영향이 74% 가량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실한 ‘정부정책’이나 수조원에 이르는 ‘예산낭비 논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비리 직원’과 ‘수억원짜리 집행 과실’ 뿐이다. 


석탄공사 재정전망 (2014 예산안 예비심사 검토보고서)


그런 와중에 우리는 오늘도 지하 막장에서 석탄가루를 마시며 석탄을 캐는 광부들을 잊어버린다. 취재를 위해 통화한 광부 정찬식씨는 “시킨대로 석탄 캐다가, 시키는대로 사람 줄였다. 정부정책에 따라 지하에서 석탄 캔 죄밖에 없는데 어제는 산업역군이라 하더니 이제는 애물단지라 한다"고 울분을 토했다.


“우리는 석탄 캔 죄밖에는 없다.” (사진: mjtmail(tiggy), CC BY)


  감사원은 조만간 서울친환경유통센터 감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오세훈 전 시장이 센터를 만들때부터 센터장으로 일했던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가 업자한테 접대를 받은 것을 적발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감사 초점이 ‘과다한 식자재 구입’에 맞춰져 있다는 증언이다. 


예산 낭비를 막는건 아주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상추 하나만 해도 품질에 따라 가격이 수십배 차이가 난다. 단순히 ‘값이 비싸다’는 것만 문제삼으며 ‘비용절감’을 요구하는 논리대로라면 싸구려 식자재를 학생들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황당한 결론밖에 남는게 없다. 공공기관 개혁은 중요하다. 꼭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정책으로 인한 문제는 쏙 빼놓은채, 비용절감을 독촉하는 공공기관 개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개혁일지 생각해볼 일이다. 


  철밥통을 깨자는 것은 가뜩이나 부족한 ‘좋은 일자리’ 혹은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자는 것과 동의어다. 정부가 방만경영의 증거로 제일 먼저 드는 것이 공공기관 부채 급증인데, 이는 원가보다 낮은 요금 역시 ‘경영’ 관점으로만 보면 불합리한 행동이다. 한마디로 최근 한국 사회를 장악하는 ‘공공기관 개혁’ 담론은 ‘공공성’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공공기관의 방만경영과 철밥통에 가장 분노하는 ‘서민’들이 공공기관 개혁 결과로 손에 받아드는 것은 공공요금 인상, 의료영리화와 철도 사유화 같은 공공성 약화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서울신문에 썼던 기사 여러편을 바탕으로 인권연대(www.hrights.or.kr)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진은 슬로우뉴스(slownews.kr)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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