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2년 3월 윤보선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전에 이미 대통령 결재란에 직접 서명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는 윤 전 대통령 사임 전에도 이미 박 전 의장이 국가 행정체계를 무시한 채 대통령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을 계기로 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거지는 가운데 나온 이 문서에 대해 전문가들은 ‘5·16 세력’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사적 사료로서 그 가치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23일 서울신문이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단독입수한 ‘한국 미곡창고 감찰보고’에 따르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박 의장은 1962년 3월 7일 대통령 서명란에 자필로 서명했다. 당시 대통령은 명백하게 윤 전 대통령이었음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그 해 3월 23일 사임했고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곧바로 박 전 의장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추대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7일 정식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 문서는 1962년 감찰위원회(현 감사원)가 작성한 것으로 320쪽이 넘는 방대한 감사결과를 담고 있다. 현재 국가기록원 성남 서고에 보관돼 있다. 피감기관인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는 비료공급, 양곡수집과 배급, 소금전매를 담당하던 공기업이었다. 자금력이 막강해서 정치권 자금줄 노릇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자료에 대해 “쿠데타로 등장한 군사정권이 기존 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사 전문가인 정진아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HK교수는 “거대 공기업과 기존 정치세력(자유당과 민주당)의 연결고리를 끊고 공직비리 척결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과 개혁성을 홍보하려는 의도가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록학 전문가인 조영삼 한신대 국사학과 초빙교수도 “이 문서는 버젓이 존재하는 대통령을 두고 쿠데타로 등장한 박 전 대통령이 행정체계를 무시한 채 권한을 행사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기록학 전문가인 조영삼 한신대 국사학과 초빙교수도 “이 문서는 버젓이 존재하는 대통령을 두고 쿠데타로 등장한 박 전 대통령이 행정체계를 무시한 채 권한을 행사한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 문서는 5·16세력이 강도 높게 시행했던 공기업 통폐합과 경영진 장악을 위해 사전 정지작업을 한 사실도 보여준다.
경제사를 전공하는 배석만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감사 직후 한국운수주식회사와 한국미곡창고주식회사를 합병한 게 바로 오늘날 대한통운”이라면서 “1961년부터 다음 해까지 공기업 감사가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곧이어 대한통운, 대한조선공사(오늘날 한진중공업), 한국전력 등 국영기업 통폐합 바람이 몰아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감사결과보고서는 중요한 현대사 기록물인데도 제대로 된 데이터베이스조차 구축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조 교수는 “국가가 나서 중요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일정시한이 지난 뒤에는 국민들에게 공개해야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면서 “국가기록원이 이제부터라도 보관중인 기록물을 정리하고 발굴하는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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