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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아랍의 봄

리비아의 미래는 이라크가 될 것인가

by betulo 2011.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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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해법이 군사 제재 조치에 방점을 두는 미국·영국과 여기에 제동을 걸려는 여타 국가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영은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하지만 여타 국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죠.

·영이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리비아의 석유 자원을 노려 과거 이라크에서처럼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영이 과거 이라크를 침공해 석유 자원을 차지했던 사례가 리비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논쟁지점을 제 나름대로 세 가지로 나눠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군사개입은 효과적일까?

중동 문제 전문가인 미국 정책연구소(IPS) 필리스 베니스 연구원은 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군이 1986년 트리폴리를 폭격할 당시에도 목표물은 카다피였지만 미사일 하나가 인구 밀집 지역에 떨어지는 바람에 민간인 100여명이 숨졌던 참사를 거론하며 비행금지구역이 그런 결과를 재연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좀 더 직설적인 지적도 있습니다. 러시아 관영 러시아투데이 4일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린지 저먼은 세계는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목격했다.”면서 영국과 미국은 리비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다른 많은 아랍 민중처럼 리비아 민중에게 중요한 건 그들의 권리를 찾고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면서 그들에겐 무력 개입이 아니라 연대와 지원이 필요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칼럼리스트인 시우마스 밀네도 3일 논설을 통해 카다피를 향한 군사적 행동은 위기를 확산시키고 민주화운동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라면서 서방의 무력 개입은 아랍 혁명에 치명적인 독약이라고 말했습니다. 베니스 연구원도 카다피 퇴진과 민주화를 위해 유엔 등의 국제적 지원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호소는 있지만 군사 개입을 호소하는 목소리를 리비아에서 듣기는 힘들다고 주장했습니다. 

둘째, 유엔 거치지 않은 무력개입은 정당한가

 미국과 영국 언론, 그리고 이 나라 매체를 주로 인용하는 한국 언론에선 비행금지구역부터 시작해 군사제재가 금방이라도 될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좀 다릅니다. 군사 제재의 첫 단추로 거론되는 비행금지구역 설정부터 국제적 반대가 만만치 않습니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이 각각 10일과 11일 국방장관회담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데요. 이 자리에서도 눈에 띄는 합의가 이뤄지긴 쉽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전망입니다. 가령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9일 현 상황에서 리비아에 대한 개입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서도 새로운 유엔의 지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리비아 관련 유엔 안보리 결의는 무력 사용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토 사무총장이 명확히 밝혔듯이 관건은 유엔 안보리 결의입니다. 하지만 이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베니스 연구원은 지난달 27일 유엔 안보리에서도 카다피에 대한 제재 결의안은 통과시켰지만 비행금지구역에 대해서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 비상임이사국인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등이 모두 반대했다.”는 겁니다.

  국가주권은 근대 국제질서의 기본 원칙이지만 현대로 넘어오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분쟁 조정,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전범재판, 기후변화 대응 등에서 보듯 주권을 일부 제한하는 국제적 조정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유엔평화유지군 파견 등 군사개입도 더 이상 낯선 얘기가 아니죠. 문제는 유엔을 통하지 않은 개입, 특히 군사적 개입입니다. 이 경우 2003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주도한 이라크 침공 때처럼 인도적 개입의 자의성이 논쟁의 대상이 됩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권국가 원칙과 국제적 개입 사이에 모호한 중간지대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재 국제질서 속에서는 유엔이라는 공론장을 통한 토론과 협의만이 가장 합리적인 개입방법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그는 유엔을 통하지 않고 특정 국가가 인도적 개입 문제를 판단한다면 인권의 정치화논란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째, 리비아는 제2의 이라크가 될 것인가.

(제가 가장 토론해보고 싶은 주제는 사실 바로 이 문제입니다. 현재 리비아 석유는 거의 다 국영석유회사가 통제합니다. 리비아가 동서로 분할된다거나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다면 석유통제권은 약해질 수밖에 없죠. 이렇게 될 경우 누가 가장 이득을 볼까요.)



혹시 출동 에어울프라는 미국 드라마를 기억하시는지. 그 드라마 첫회를 보면 에어울프를 탈취한 악당이 향하는 곳이 바로 리비아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미녀들에 둘러싸여 미친 짓을 서슴지 않고 미군 함정을 공격해 침몰시키기도 하죠. 카다피를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이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비판은 또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부시 대통령은 리비아를 악의 축가운데 하나로 인증도 해줬죠.

2003년 핵무기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하고 3년 뒤 관계정상화까지 이루면서 미국에서 카다피 비판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미국은 입을 싹 씻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리비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숱한 미국계 석유기업들이 리비아로 몰려들었습니다. 서방은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단물을 빨아먹으며 좋은게 좋은거다 하며 지냈습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성공을 거둔 민주화시위가 리비아에 상륙했습니다. 상황은 급속히 민주화시위에서 내전 국면으로 옮겨가 버렸습니다. 부족사회라는 특성상 단순한 민주화시위로 리비아를 규정하긴 힘들다는게 요즘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허둥지둥하는 듯 했던 미국은 리비아에 대해서는 꽤 신속하게 군사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시위 초기 무바라크를 굳건한 동맹으로 묘사하며 시위대에게는 자신들의 주장을 평화적으로 개진할 의무가 있다고 훈계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이제 무고한 민주시민들을 돕기 위한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미국 언론에 비친 카다피는 다시 한번 출동 에어울프 시절 모습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한때 미국의 꼬붕일때는 친구 먹다가 개기기 시작하는 순간 사탄의 후예로 낙인찍혀버린 후세인처럼 말이죠.

러시아투데이는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미국과 영국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이미지를 과거 이라크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으로 몰아가면서, 결국 리비아를 제2의 이라크로 만들려 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내비칩니다.

전직 영국 정보기관 간부인 애미 매천은 러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인도적 지원 조치는 결국 대규모 침공을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이 이런 시각을 은연중에 드러냅니다. 그는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네덜란드인 3명이 억류돼 있다며 현재 리비아에 일부 특수전 관계자들이 잠입해서 모종의 공작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도 내놨습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의 발언은 그냥 흘려듣기엔 정황증거가 분명히 있습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직 영국 군 정보 당국자가 서방국가들이 정부군의 위치를 알려주는 등 군사적 지원을 제공해 반정부 세력을 도와줄 것이라면서 다양한 비밀작전을 위한 은밀한 요소가 존재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인디펜던트는 영국 정부가 비밀리에 반카다피 진영을 지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정부 소식통의 발언을 전하면서 영국이 인도적 지원 이상을 구상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날 선데이타임스도 반카다피 세력과 접촉하기 위해 영국 특수부대(SAS) 8명과 함께 리비아에 잠입한 영국 외교관이 억류돼 있다고 보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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