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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국가재정에서 '개혁의 화수분'을 발견하다

by betulo 2010.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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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건호, 2010,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레디앙.

여기 ‘386’ 출신 두 사람이 있다. 모두 개혁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감을 안고 17대 국회에 발을 디뎠다. 한 사람은 국회의원으로, 다른 한 사람은 의원 보좌관으로. 둘은 개혁을 위한 국정운영 경험이 없다는 점에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부족함을 메꾸는 방법은 전혀 달랐다.

한 사람은 한 민간 경제연구소한테서 경제 공부를 ‘속성으로’ 배웠다. 다른 사람은 정부예산서를 뒤지는 길고 지루한 작업을 통해 국가재정을 알아 나갔다. 전자는 교육부 특별교부금이 사회적 논란이 됐던 2008년 특별교부금을 개혁한다며 사실상 개악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후자는 몇 년 걸쳐 쌓아온 내공을 바탕으로 ‘건강보험 하나로’라는 획기적인 운동을 선도하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2010년 10월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란 국가재정 입문서를 냈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사람 좋은 웃음 속에 치열함을 숨길 수 없는 연구자다. 과거 수많은 혁명가들이 혁명의 열정으로 학문연구에 매진해 학자로서도 일가를 이뤘듯이 오건호 실장 역시 운동을 위해 국가재정을 연구해 이 분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전문가가 된 경우다.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는 오 실장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그 때문에 책 곳곳에서 번뜩이는 재치를 느낄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이 약 1000조원이라는 점을 기억하라(55쪽)”는 조언을 예로 들어보자.

각종 숫자와 ‘국가재정의 몇 %’하는 통계자료는 일반인들이 국가재정에 관심을 갖는데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1000조원이라는 걸 기억하면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GDP 대비 20.1%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약 200조원을 손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책의 최고 미덕은 ‘대한민국 금고를 열어서’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재정전략’을 제시한다는 데 있다. 특히 진보적 국가재정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목이나, 재정지출 프레임에서 세입확대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무릎을 치게 된다. 가령 ‘한국형 복지국가를 향한 세박자 복지전략’(242~244쪽)을 통해 제시하는 ‘전략적 보편 복지’와 ‘사회보험 복지’ ‘취약계층 복지’가 기존 복지담론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은 구체적인 재원마련 전략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고 힘을 갖는 이유는 ‘실사구시’에 입각한 ‘각론’이 책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이제 진보진영이 국가재정 분야만큼은 수권능력을 갖게 됐다’는 추천사가 결코 빈말이 아니다.

각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과거 참여정부 당시 ‘비전 2030’이나 ‘새로마지플랜(제1차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나지 않나 싶다. 참여정부 핵심부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인 위 계획들은 방향 자체는 옳았다. 하지만 재원마련방안에 대해서는 ‘조세감면을 최소화한다’는 수준에 그쳤다. 예산없는 정책은 말대포에 불과하다.

(그나마 새로마지플랜 발표하고 나서 몇 달도 안돼 당시 재정경제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조세감면 연장을 적극 검토한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저자는 지출통제가 아닌 세입확대 프레임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한다. 즉 낮은 총직접세가 문제의 핵심이라며 복지국가전략을 위한 재원마련 전략으로 한시적인 사회복지세와 건강보험료율 자발적 인상운동을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회복지세를 과거 민주노동당이 공약으로 제시했던 부유세 개념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포괄하자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부유세 중심의 운동도 중요하지만, 이들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서, 그리고 한국에 부족한 110조원의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중간 계층들도 재정 확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120쪽).”면서 2010년 사회복지세를 발의한 진보신당이 과세 대상을 상위 5%로 한정한 것을 아쉬워한다. 그가 보기엔 사회복지세를 부유세로 한정해 버린 것은 “기존 프레임을 바꿀 만큼 용감하지 못”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너무 칭찬만 해주면 공정성 시비가 있을 수 있다. 하여 ‘옥의 티’를 좀 짚어보는 것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먼저 독자들에게 저자를 멋지게 소개하느라 진보개혁진영에 예산감시 전문가가 한 명 뿐인 것처럼 비치게 만들지 않았나 싶은 우석훈 추천사 5쪽 첫 줄에 등장하는 목수정의 에세이집 제목은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자유로운>이 아니라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이 맞다.

지방재정을 설명한 16장에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자꾸 지방재정교육교부금이나 지방교육교부금, 지방교육재정부금 등으로 잘못 써서 혼란을 초래했다. 교부율도 206쪽에선 ‘내국세의 20.27%’를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한다는 점을 맞게 썼는데 217쪽에선 법개정 이전 기준인 ‘내국세의 20%’로 서술했다.


이 글은 <월간 좋은예산>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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