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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브라질 대통령 룰라, 우리는 이런 지도자를 원한다

by betulo 2010. 1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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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만큼 행복한 ‘말년’이 또 있었을까. 지금도 80%를 넘나드는 그의 지지율은 올해 말 퇴임을 앞뒀다는 게 무색해질 정도다.

브라질은 물론 국제사회가 그가 퇴임 뒤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나설지 세계은행 총재 자리에 도전할지 주시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그에게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이라고 치켜세운 게 빈 말이 아니다.

 

룰라 대통령. 자세히 보면 왼쪽 새끼 손가락이 없다. 어린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렸다고 한다.


룰라 대통령은 3전4기 도전 끝에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이듬해 임기를 시작했고 2006년 재선에 성공했다. 노조 지도자 출신 과격한 정치집단이라는 부유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광범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한 끝에 국가부도 위기에 치닫는 경제상황 속에서 취임한 그는 중도좌파라는 정치적 지향점을 견지하면서도 유연한 정책을 통해 브라질 경제를 정상화시켜나갔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5% 가까운 성장을 이끈 배경에는 적극적인 산업정책과 함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기아퇴치 프로그램과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등 강력한 분배정책이 있었다.

 룰라 대통령의 인생드라마는 양극화에 시달리는 브라질 빈민의 삶을 대변한다. 브라질 북동부 궁벽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룰라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0살때가 되서야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나마 4학년 때 자퇴했다. 그의 최종학력은 지금도 초등학교 중퇴다. 상파울루에서 구두닦이와 행상으로 돈을 벌다 금속공장에 취직한 뒤 산업재해로 왼쪽 새끼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과 결혼했지만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 간염에 걸려 뱃속 아기와 함께 죽었다. 이후 룰라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1975년에는 조합원 10만명이 넘는 금속노조 위원장에 당선됐다. 1980년 노동운동가와 지식인 등과 함께 노동자당(PT)을 결성했다. 룰라는 1986년 선거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연방하원에 당선되며 성공적으로 정치에 입성했다.

이제 룰라는 정권재창출이라는 새로운 성취도 이뤘다. 10월31일 선거에서 그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후보가 당선됐다. 이제 세계는 룰라가 퇴임 뒤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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