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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극단으로 치닫는 태국, 갈등의 뿌리는

by betulo 2010.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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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정부와 반정부시위대의 유혈충돌사태를 몰고 온 극한 대립의 직접적인 계기는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몰아낸 2006년 9월 쿠데타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엘리트 지배계급과 가난한 농민계급·도시빈민층 사이의 계급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개월 넘게 반정부시위를 벌이는 이른바 ‘붉은 셔츠’의 핵심은 도시 빈민층과 북부와 북동부 지역 농민들이다. 이들이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것은 탁신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이들을 위한 정치를 편 적이 없다는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탁신 전 총리는 2001년 취임 이후 농가채무 탕감, 저소득층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사회기반시설 확충 등을 통해 저소득층 소득수준을 높여 유효수요를 창출하려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이런 정책의 최대수혜자가 바로 북부와 북동부에 거주하는 빈곤 농민층과 도시빈민층이다.


 이들과 달리 도시 중산층들은 세금은 자기들이 내고 농민 좋은 일만 시킨다며 탁신 총리에 대한 불만을 키웠다. 탁신 정권이 언론을 통제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것도 반감을 키웠다.


 2006년 쿠데타는 탁신 지지세력과 반대세력의 갈등이 표면에 드러난 계기가 됐다. 탁신 반대세력인 ‘노란 셔츠’는 왕실과 군부 등 지배엘리트를 주축으로 한다. 노란색 자체가 왕실을 상징하는 색깔이다.


‘노란 셔츠’는 특히 쿠데타 이후 첫 총선에서 탁신계 정당인 ‘국민의 힘’이 승리하자 2008년 8월부터 3개월 넘게 정부청사를 점거했고 같은 해 11월 말에는 수완나품 국제공항과 돈므앙 국내공항을 8∼9일 동안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결국 친탁신계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던 정부는 무너졌고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를 수반으로 한 현 정권이 들어섰다. ‘붉은 셔츠’로서는 ‘노란 셔츠’가 ‘투쟁 승리’의 선례를 보여준 셈이다.


 지난 2월 말 대법원이 부정축재 혐의로 태국 내 은행 계좌에 동결돼 있던 탁신 전 총리의 재산 766억바트(약 2조 7000억원) 가운데 460억바트를 국고에 귀속시키라고 한 판결은 갈등에 불을 질렀다. 대법원 판결 직후 ‘붉은 셔츠’는 조기 총선과 의회 해산을 촉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총선을 실시하면 표대결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극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지만 양측의 구심점인 국왕이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도 브레이크 없는 충돌을 부채질하고 있다. ‘살아 있는 부처’로 추앙받으며 현실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푸미폰 아둔야뎃(82) 국왕은 노환으로 인해 지난해 9월부터 장기 입원치료를 받으며 최근 정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태국 방콕의 시위현장에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쟁전문기자 이유경(37)씨는 19일 태국 정부의 시위대 강제진압과 시위대의 저항을 지켜봤다. 이씨는 현장을 “전쟁”으로 표현했다. 통화는 이날 19일 오후 6시쯤 이뤄졌다.

→현지 상황은.

-군인들이 시위 현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시위대가 곳곳으로 흩어지면서 방송국과 쇼핑몰 등에 방화를 하고 약탈을 했다. 혼란이 극에 달했다.  시내 곳곳이 말 그대로 ‘내전’ 같다.

→사상자는.

-군인들을 뒤따르면서 현장을 목격했는데 군인들이 총을 쏘면서 전진했다. 시위대가 있으면 ‘항복하지 않으면 사살하겠다.’고 경고했다. 조금이라도 반항하거나 저항하면 시위대를 직접 겨냥해서 총을 쐈다. 군인들은 전쟁터에서 적군을 상대하듯 시위대를 대했다. 외신에 서는 사망자가 최소 5명이라고 했는데 훨씬 많을 것이라고 본다. 시위대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사망자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일 것 같다. 랏차쁘라송 근처의 사찰에는 많은 시위대가 피신해있다.

→강제진압작전은 어떻게 진행됐나.

-마치 체포와 해산, 그리고 사살을 동시에 염두에 둔 작전으로 보였다. 체포된 사람도 굉장히 많이 봤다. 랏차쁘라송 교차로로 가는 중간쯤에서 시위대 20여명이 군인들에게 잡혀 있었다. 군인들은 시위대의 손을 뒤로 묶고 눈을 가리고 엎드리게 해놓고는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었다. 한참을 때리고 밟더니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승려도 잡혀갔다.

→향후 태국 정국은.

-내전상황으로 악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도부는 항복하겠다고 했지만 일반 시위대는 항복할 의사가 없다. 반정부 시위대는 2개월 넘게 나름대로 조직적으로 시위를 이끌어왔다. 그런데 오늘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겪고 나면 자제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지 않겠나 싶다.



이유경씨와 인터뷰는 18일에도 했다. 시위대와 정부가 교섭에 나섰기 때문에 하루동안 짧은 휴전을 했던 이날의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전해줬다. 아래 사진은 이유경씨가 제공한 것들이다.




→ 농성장 분위기는 어떤가.

-시위 본부에선 계속 앉아서 노래하고 연설듣는다. 거의 24시간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17일 오후 3시까지 해산하라고 최후 통첩을 했지만 시위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분위기다. 해산할 생각이 없는 같다. 군대가 두렵다는 시위대는 지금까지 딱 한 명 봤다. 다들 안 무섭다고 말하고 있다. 방콕 경찰은 레드셔츠를 잡지 않는다. 레드셔츠도 경찰을 건드리지 않는다. 때문에 경찰이 친 레드셔츠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시위대 구성은 어떤가.

-시위대는 5000명 정도인데 대부분 지방 출신 농민들이다. 상당수가 여성, 아줌마들이고 어린이들도 조금 있다. 남자들은 거의 농성장 주변에 설치된 6곳의 바리케이드를 지키고 있다. 밤이 되면 전기가 끊어져 어둡다. 물은 나온다. 요즘 음식 공급이 어려워졌지만 아직은 괜찮다. 여성이나 어린이들을 전면에 시위의 세우는 ‘인간 방패’라는 보도도 있기는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현지에서 본 무력충돌의 발단이라면.

-태국 정부는 13일 방콕 시내 중심가에 있는 농성장을 원천봉쇄했다. 그동안 퇴근 뒤에 시위에 동참하던 사람들이 농성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같은 조치가 폭력사태를 초래했다. 한마디로 시위현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과 막으려는 경찰이 충돌한 것이다.

→방콕 시민들의 움직임은.

-중산층 이상 시민들은 시위 자체에 짜증을 내고 있다. 그들 다수는 왕당파 성향이 강하다. ‘우리는 왕을 사랑한다.’가 옐로셔츠 조직의 구호다. 이들은 줄곧 계엄령을 선포해 시위대를 강제 진압하라고 목소리를 높여오고 있다. 방콕 중산층에게 시골 농민들은 이등국민이나 다름없다. 옐로셔츠가 농성장 옆에서 시위대 해산을 요구하라며 개최한 집회에 가봤는데 농민들을 대놓고 비하하는 구호가 난무하는데 놀라웠다. 계급갈등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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