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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우리가 몰랐던 또다른 '피묻은 다이아몬드(Blood Diamond)'

by betulo 201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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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에선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진 나라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풍부한 자원이 자동으로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천연자원이 자칫 ‘악마의 축복’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석유자원을 둘러싼 부패와 분쟁으로 얼룩진 중동이나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왼쪽 사진)로 잘 알려진 서아프리카의 참상이 대표적인 사례다.(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8110)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피묻은 다이아몬드’도 적지 않다. 반면 천연자원을 국가발전의 밑천으로 삼는 나라도 존재한다.

(발화점: Foreign Policy)

●미얀마 독재정권 버팀목 루비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미얀마는 유럽연합(EU)과 미국으로부터 경제 제재를 당하고 있다.

EU는 1996년부터 비자 발급 중지와 미얀마 지도층의 유럽내 자산 동결, 광물자원 수입 금지 등 제재를 해왔다. 미국도 2003년부터 미얀마를 제재한다.

하지만 1962년 이후 5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는 군사정권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민주화 운동가 아웅산 수치 여사는 지금도 가택연금 상태다.

(미얀마 최근 정세에 대해서는 미얀마와 아웅산 수치는 오늘도 '민주화의 봄'을 기다린다  버마에 희망을 참조)

23.1 캐럿의 카르멘 루시아 루비. 정교한 세공을 거쳐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이 루비의 원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루비들 가운데 최대크기라고 한다. 1930년대 미얀마에서 발견된 뒤 개인이 소장해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군사정권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원천은 무엇일까. 바로 풍부한 천연자원이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355733.html). 그 중에서도 ‘사랑’의 징표로 유명한 보석인 루비는 천연가스와 목재에 이어 군사정권의 ‘돈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세계 루비 가운데 90% 이상이 미얀마산이다. 미얀마산 루비는 ‘비둘기 피’라고도 부르는, 검은빛이 도는 붉은색으로 유명하다. 보석광산은 대부분 군사정권 소유다.

미얀마는 1964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 이상 보석 경매시장을 개최한다. 세계 최고의 보석을 사기 위한 행렬이 전세계에서 줄을 잇는다. 포린폴리시 최근호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미얀마 군사정권이 2006년에만 3억달러 가까운 거금을 루비를 통해 벌어들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2008~2009회계연도에 미얀마는 루비 등 보석류를 187억 2800만캐럿이나 생산했으며, 지난해 6월 열린 특별 보석경매시장에서 거둔 매출액만 해도 2억 9200만달러나 됐다.(http://english.cctv.com/20090914/102597_1.shtml)

루비 채굴을 위해 군사정권은 어린이들까지 강제동원한다. 광부들을 조금이라도 부리기 위해 식수에 필로폰을 섞어 먹인다는 충격적인 실태가 외신보도로 알려지기도 했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239683.html) 반면 군사정권 수장의 딸은 지난 2006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이아몬드와 루비로 치장한 호화판 결혼식을 올려 빈축을 샀다(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siapacific/168999.html).

●자원 때문에 슬픈 아프리카

아프리카 중앙에 한반도보다 10배나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DRC·옛 자이르) 동부는 세계적인 자원의 보고다. 매장된 지하자원의 가치가 3000억달러로 추산될 정도다.

특히 전세계 매장량의 80%를 차지하는 콜탄은 별명이 ‘회색 금’일 정도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린다. 유엔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콩고가 콜탄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모두 7억 5000만달러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콜탄이 반군의 자금줄이 되면서 ‘핏빛 광물’이 돼 버렸다는 점이다. 콩고는 1996년 11월~1997년 5월 1차 내전, 1998년 8월~2003년 7월 2차 내전을 겪었다. 2차 내전 당시엔 아프리카 8개국 25개 무장단체가 개입해 ‘아프리카판 세계대전’ 양상을 띄기도 했다.

2003년 임시정부가 종전을 선언했지만 이내 내전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동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반군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콜탄 광산 채굴권을 통해 군자금을 마련한다. 이 때문에 콩고 정부 관계자조차 “광물이 없는 곳엔 반군도 없다.”고 말할 정도다.

미국진보센터(CAP) 부설 ‘이너프 프로젝트’(Enough Project)가 지난해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반군들은 주석, 콜탄, 텅스텐 등 광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린다. 특히 콜탄을 활용한 축전장치를 달면 전자제품을 소형화하고 고온에도 잘 견디기 때문에 MP3,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노트북 등 각종 제품에 사용된다. 이 때문에 이너프 프로젝트 관계자는 “전자제품 소비자는 곧 콩고 동부에서 폭력을 통해 생산된 광물의 최종 사용자”라고 꼬집기도 했다(CNN Money 참조).

유엔은 국제적인 정보통신(IT) 기업들이 콩고산 콜탄을 구입하지 못하도록 제재한다. 하지만 인근 르완다로 밀반출된 뒤 팔리는 콜탄에 대해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CNN머니에 따르면 콩고산 콜탄은 배에 실려 말레이시아, 태국, 중국, 인도 등으로 간 다음 원산지를 숨기기 위해 다른 곳에서 생산된 콜탄과 뒤섞인 채 전세계로 팔려 나간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기니에서는 알루미늄 원광으로 쓰이는 보크사이트가 ‘핏빛 광물’이다.

기니 국내총생산(GDP)의 20%인 8억 5700만달러가 보크사이트 수출에서 나온다.

1958년 독립한 뒤 대통령 두 명이 각각 26년과 24년씩 종신집권했던 기니는 현재 군사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포린폴리시 최근호는 “보크사이트를 채굴하는 다국적기업들은 ‘공식적’으로는 지역개발을 위한 세금을 지역사회에 납부하지만 기니 국민의 70%는 여전히 빈곤층”이라면서 “보크사이트로 인한 과실은 모두 독재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최근 기니에 긍정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콩테 사후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항의시위와 해외 원조 중단으로 위기에 처하자 향후 6개월 안에 대통령선거를 실시하기로 지난달 합의한 것.

선거관리는 야당 지도자인 장마리 도레 신임 총리가 맡기로 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00204/25928780/1
) 하지만 2007년 나온 레프트21 기사(http://www.left21.com/article/3811) 참고한다면 이번 대통령선거 소식을 마냥 기쁘게만 받아들이긴 어려운 듯 하다.

●푸른색 보석이 부른 핏빛 내전

남미대륙의 서북부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2억 8000만달러에 달하는 전세계 에메랄드 무역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에메랄드 생산 세계 1위 국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신비한 푸른빛이 도는 이 귀한 보석이 수십년 동안 이어진 핏빛 내전의 씨앗을 뿌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콜롬비아 마약조직을 거슬러 올라가면 코카인과 마리화나를 거쳐 에메랄드 생산 유통을 장악한 범죄조직으로 뿌리가 이어진다(여기를 참조). 에메랄드 마피아는 마약카르텔에 맞서 사업영역을 지키기 위해 1980년대 ‘녹색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큰 에메랄드 광산지역이 위치한 콜롬비아 북서부 보야카 주가 전쟁의 주무대가 되면서 35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낳았다.

지금도 에메랄드 조직들은 광산을 장악한 채 여성과 어린이를 동원해 에메랄드를 캐고 있다고 포린폴리시 최근호는 전했다.
 

서울신문 2010년 2월2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참고한 참고자료 출처를 밝혔으며 일부 표현과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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