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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이한구 의원 "재정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

by betulo 2009.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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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이 지난달 22일자부터 매주 두 차례씩 연재했던 ‘정부예산 대해부’ 기획이 8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정부예산 대해부’는 그동안 사회복지·교육·연구개발·농업·에너지·국방·건설 등 7개 분야에 걸쳐 내년도 정부예산안을 중심으로 재정운용 문제점과 과제를 집중 점검했지요.

공교롭게도 기획연재를 마치자마자 국제부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지는 정책뉴스부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기획으로서 제게 더 큰 의미를 남겼습니다.

오스트리아 태생 경제학자 슘페터는 “재정을 이해하고 판독할 수 있는 사람은 국가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국가재정을 민주적 통제 아래 둬야 한다고 재정전문가들은 진단합니다. 이는 곧 행정부가 아닌 국회가 예산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요.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여당과 야당에서 최고의 예산전문가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대구 수성갑·3선)과 이용섭 의원(대구 광산을·초선)을 인터뷰하는 걸로 기획을 마무리했습니다. 원래는 인터뷰와 별도로 <위협받는 재정민주의>를 주제로 기사를 더 쓰려고 했지만 지면사정으로 중간에 취소됐습니다.

이한구 의원은 경제관료 경험과 경제학 연구 경험을 갖췄으며 지난 5월까지 18대 국회 첫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위원장을 지냈고요. 이용섭 의원은 재무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행정자치부장관 등을 거친 재무행정 전문가입니다.

두 의원은 야당과 여당으로 당이 다르지만 국가재정에 대해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공통적으로 행정부의 독단과 일방통행이 재정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으며, 이는 재정정보 숨기기와 통계조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성토했습니다.

정부가 사용하는 ‘국가채무’가 국제 기준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부채’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기업부채와 민자사업 수익보전까지 포괄하는 국가부채 기준으로 바꿀 것을 촉구하는 것도 비슷했고요.

정부는 내년도 국가채무가 407조원(GDP 대비 36.9%)으로 OECD평균(GDP 대비 79.7%)선진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는 입장이지만 두 의원은 국가부채 개념에 입각해 정부논리를 반박합니다. 다만 기준 설정에 따라 차이는 존재했습니다. 이용섭 의원은 내년도 국가부채를 최소 850조원(GDP 77%)로, ‘광의의 국가부채’는 1823조원(지난해 기준)으로 추정했으며 이한구 의원은 2008년 기준 1429조원으로 추정했죠.

지면에는 다 싣지 못한 이한구 의원 인터뷰 전문을 올립니다. 이용섭 의원 인터뷰 전문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재정민주주의 위기라는 문제의식 동의하나

-재정민주주의는 세가지 원칙을 전제로 한다. 첫째,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재정을 써야 한다. 둘째, 투명하게 집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공평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바로 생산성(혹은 효율성), 투명성, 공평성이다. 좌파정권 10년간 정부가 그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국가부채 문제는 혹독하게 비판했다. 꼭 빚을 내야 할 때도 재정원칙에 맞아야 한다. 빚내는 만큼 더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집행 효율성을 신경써야 한다. 그러려면 투명하게 해야 한다. 공평성은 특히 세대간 부담을 고려해야 한다.

지금 세대가 미래세대에 덮어씌우는게 국가부채문제다. 요새는 특히 한기지 문제가 더 생겼다. 바로 감세문제다. 지금 국가부채 증가는 상당부분 감세에 기인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재정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걱정하는거다. 

재정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재정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장기적으로 지속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속여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바로 재정포퓰리즘을 남발한다. 그건 용도가 재정원칙에 안맞고, 투명성이 없고, 공평하지도 않다.

재정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자유, 경쟁, 책임을 무너뜨린다. 생산적인 사업집행이 가능하려면 경쟁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사업을 결정할 때 공평하게 점검해야 한다. 재정포퓰리즘에선 몇 사람이 제 멋대로 절차도 없이 해버린다. 공평하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다.

당연히 결정하는 사람도 책임을 안지고 쓰는 사람도 책임을 안진다. 정치적 로비만 강력해진다. 따내기만 하면 되니까. 일단 따내면 그건 공짜고 책임질 일도 없다. 결국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재정민주주의의 역사는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와 같은 과정을 거쳐왔다. 국민이 주인 구실을 못하고 몇몇이 제멋대로 결정하고 급한대로 국가부채를 늘리게 되면 얼마 안 가 세원이 거덜나고 결국 세금을 더 걷거나 인플레이션으로 해결하려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떤 경우건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긴다는 점에선 똑같다.

→그런 원칙에 비춰 지금 정부를 평가해달라.

-경제개발 당시에는 관료들이 중추가 되는 특수성이 있었다. 좌파정권 10년에도 처음엔 관료를 누르는 듯 했지만 나중엔 관료에게 사로잡혔다. 지금 정부도 마찬가지다. 국가경제 체질강화 실패를 바로잡겠다는 애초 공약이 관료주의에 막히고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도로 아미타불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감세는 했는데 대신 각종 부담금을 잔뜩 올려놨다. 엉뚱하게 부자만 감세하는 바람에 경제활동하는 사람에겐 혜택이 없다. 요즘은 ‘감세 했으니까 사회기여하라’며 재벌들 보고 자꾸 법적 근거도 없이 서민 살릴테니 돈 내놓으라, 세종시 만드는데 기여하라 하는 건 원칙에 맞지 않다.

특히, 재정포퓰리즘과 관련해 걱정되는 건, 경제위기 때문에 복지지출 늘려야 하고, 취약계층 일자리도 만들어야 하는 등 급하게 써야 할 곳이 많은 건 틀림 없다고 하더라도 재정원칙은 지켜야 하는건데 그게 잘 안된다는 점이다. 재정 생산성을 따져보고 사업을 벌이는가,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하느냐, 사업내용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정보제공하는가, 미래 세대를 감안하고 있는가. 그런 것들에 답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해 자신이 없는 것 같다. 4대강이 그렇고, 세종시 문제도 그런 위험이 있다. 취업후학자금상환, 미소금융, 녹색성장 등 눈먼 돈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다.

→재정포퓰리즘이 만연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 보나.

-기본적으로는 관료주의가 문제다. 관료들은 재정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재정관료주의는 예전부터 계속 어어져왔다. 다시 말해 관료 문제는 변수(變數)가 아니라 상수(常數)다.

요즘 보면 정부·여당이 발동을 거는 게 상당히 많다. 예전에는 야당에서 재정포퓰리즘 제안을 많이 해서 골치 아프게 했는데 이제는 정부·여당이 야당보다 더하다. 예전엔 말도 못 꺼냈던 각종 눈먼 돈 정책이 막 나오고 있다.

재정포퓰리즘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예결위원장이라면 모든 권한을 발동해서 제동을 걸겠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분명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 다만 나 자신 여당 소속 의원이라 입장이 참 묘하다. 그건 야당의 몫으로 남겨놓겠다.

재정포퓰리즘은 통제약화와 충성경쟁이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위에서 재정포퓰리즘을 지향하면 우선 관료들을 제어할 근거가 없어져 버린다. 관료들이란 위에서 일을 벌이면 단기성과를 보여주려고 ‘오버액션’을 하는 경향이 있다. 충성경쟁이 벌어지는 거다. 한참 하다가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그만해야 하는데 정부가 내놓는 엉터리 ‘국가채무’ 통계가 눈을 가리고 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 서로 모르고 질주한다. 그러다 언젠가는 다치겠지.

→오랫동안 국가부채 문제를 일관되게 지적해왔다. 정부 반응은 어떤가.

-지난 정부부터 국가부채 통계가 잘못됐다는 점, 국제기준과도 맞지 않는 국가채무를 국가부채 개념으로 정상화하라고 줄기차게 지적했다. 정부에선 계속 말도 안되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정권교체하고 나서 처음엔 기획재정부에서도 정상화하겠다면서 팀도 만들었다.

적어도 문제가 있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못하고 회계처리 방식을 고치는 문제를 비롯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핑계를 대며 미적미적거렸다. 작년에 내가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할 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기준에 맞춰서 자료를 내놓지 않으면 예산안통과 힘들거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그때는 개혁하려는 듯 하더니 내가 떠나고 나니 소식이 없다. 예결위원장을 다시 해야 하나보다(웃음).

→국가부채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재정문제는 우리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감추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예산을 다루는 공무원과 국회의원들은 책임감을 갖고 투명하게 모든 것을 밝히고 국민들이 선택하도록 해줘야 한다. 한국은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국가적 과제다. 남북통일과 고령사회를 맞으면 재정지출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가부채를 줄이거나 최소한 증가 속도를 줄여야 한다. 경제관료들은 지금도 ‘아직은 괜찮다.’는 소리만 하고 있다. 지금 행정부 맡고 있는 사람들에겐 괜찮겠지. 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할 건가. 후손들에게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이라면,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나라가 장기적으로 발전하도록 힘써야 한다.

재정문제야말로 국가의 백년지대계라는 걸 알아야 한다. 여러 상황을 감안하면 한국의 국가부채는 참여정부 때보다 악화됐고 OECD 평균보다 오히려 더 나쁜 상황인데도 정부와 여당이 경쟁하듯 당장 편한대로 재정 악화시키는 일만 골라서 한다.

→4대강 사업이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서 핵심 쟁점인데.

-취지는 찬성한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모든 사업이 무조건 정당성을 갖는 건 아니다. 생산적으로 디자인돼 있는지, 집행 준비를 잘 했는지, 사업과정에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잘 대비하고 있는지, 법절차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하나하나가 재정민주주의와 직결된다. 그걸 무시하고 하겠다고 하면 사업 성공도 보장할 수 없고 국가의 법질서만 파괴하게 된다.

우선은 팍팍 쓰느까 좋아 보이지만 뜯어보면 미래세대에게 짐만 지우면서 효율적이지도 않고 생산적이지도 않은 일을 벌이는 게 현실이다. 지난 정부가 문화단체에 헛돈 썼다고 실컷 비판하면서 지금 정부도 희망근로 등에서 똑같은 문제가 생기는데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듣겠는가. 더구나 국가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더 심각하다. 빨리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사업비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엔 숨겨놓은 사업비 2조원이 들통났다. 4대강 사업에서 가장 핵심은 막대한 재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이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큰 재정사업을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는게 놀라울 따름이다. 그 정도 규모라면 굉장히 다양한 측면에서 조사연구를 했어야 했다. 치밀하게 계획을 짜도 하다보면 삐거덕거리는게 많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결정하고, 법령이 규정한 절차도 생략한 채 하겠다고 한다. 그게 가장 큰 불안요소다.

환경이나 안전, 문화재에 미치는 영향도 그렇지만 올해 추경예산에 시범사업으로 배정하고 나서 몇 달 사이에 사업예산이 몇 배나 늘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가, 무슨 사업이 얼마나 허술하면 이렇게 금액이 바뀌나 싶어서 다시 점검했더니 사업비 중 일부는 누락돼 있더라. 요즘 드러난 2조원만 있는게 아니다. 간접연계사업까지 들어가면 말도 못할 지경이다. 간접연계사업은 범주도 정해져 있지 않고 본사업조차 산출근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똑 부러지게 내놓질 못한다.

정부에서 나름대로 준비했다는게 이 모양이다. 정부는 자꾸 괜찮다 그러는데, 그럼 중요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즉시 할 수 있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한마디로 굉장히 어설프게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니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 재정민주주의를 위해 예결위를 상임위원회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맞다. 국회에서 예산안심의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비전문가들이 예결위원이 되고, 그것도 임기가 1년밖에 안되니까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이번에 한나라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가진 여당이 되면서 하루아침에 태도를 바꿨다. 나는 그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당 입장변화 없는 한 18대 국회 내내 상임위화 개혁은 힘들거라 본다. 내 입장은 여당 안에서도 소수입장이다. 대부분 위원들은 관심이 없다. 그게 불행이다. 야당에서 요즘 그 주장을 하던데, 그러길래 17대 국회 때 우리 주장 받아들였으면 좋았을텐데(웃음). 그래도 요새 좋아진 건 예전엔 기획예산처가 운영위원회 소속이었는데 이제는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라는 점이다.

→그밖에 필요한 점을 꼽는다면.

-지난 정부와 비교해보면 요즘 정부관료들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여당에서 얘기하는 것조차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린다. 또 국회가 재정문제에 전문성을 갖고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다.  시민운동은 오죽하겠나. 국회가 민간의 예산감시운동과 연대하는 것도 재정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안타까운 건 아직도 유권자들이 국회의원들을 지역구 사업 따오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결국 자기 주머니 털리는 줄도 모르는거다. 막걸리 대접해서 표를 사는 매표행위가 나쁘다는 걸 사람들이 인식한게 사실 얼마 안됐다.

표를 사는걸 자기 돈으로 하겠나. 결국 그게 유권자 주머니 터는거다. 그걸 알게 되면서 고쳐진거다. 재정민주주의는 그것보다 훨씬 느리게 발전할 수밖에 없다. 눈에 잘 안보이니까. 그 순환구조를 잘 보이도록 해줘야 할 책임이 전문가, 국회에 있다.

<11월10일 오후 3시30분부터 4시30분까지 한 시간 동안 인터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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