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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귀향, 호남향우회, 온정에 대한 삐딱한 시선

by betulo 2009.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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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맞아 끄적여 본 '편견타파 캠페인'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추석은 즐겁습니다. 비록 시골가는 길이 고생길이고 서울 돌아오는 길은 더 고생길이더라도요. 그 때 불현듯 명절에 서울에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얘기해준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길이 하나도 안 막혀 자가용을 타고 서울시내를 운전하고 다녀도 고속도로 운전하는 기분이고, 느긋하게 영화나 연극 뮤지컬 같은 각종 공연을 즐길 수 있고, 무료 행사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생각해 봤습니다. 추석맞이 편견타파 캠페인. 두둥~

첫 번째는 바로 추석은 고향 내려가야 제 맛이라는 극도로 이주민 중심적인 편견이었습니다. 솔직히 고향 내려가는 건 이제 별로 즐겁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님을 뵈로 가는게 즐거울 뿐이지요. 부모님이 만약 경기도 사는 형네 집으로 오신다면? 그 또한 즐겁겠지요.

두 번째 떠오른 편견은 제가 가야할 고향에 관한 것입니다. 흔히들 한국의 3대 조직으로 해병대전우회, 고려대 동문회, 호남 향우회를 꼽던데요. 해병대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있는 컨테이너박스와 사제(私製) 군복 덕분에 워낙 유명하고, 고려대 동문회는 가카께서 몸소 실천하고 계시니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문제는 호남 향우회인데요. 호남이 고향이고 호남에서 지금까지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는 호남향우회가 한국의 3대 조직이라는 건 편견일 뿐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개인 경험. 저는 이날 이때껏 호남 향우회에 참석해본적도 없고 가입해본적도 없습니다. 심지어 모임 참석 권유를 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호남이 고향인 친구가 제 주위에 꽤 있는데 호남 향우회에 참석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도 없고 가입했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단 한번도. 주위에 호남이 고향인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호남 향우회 비슷한 모임에 가본 적이 몇 번이나 되는지.

혹시 40대 이상 혹은 50대 이상에서 호남 향우회라는 게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마도 그 때 잠깐 얘기겠지요. 요즘 대학가에 흔히들 ‘상상 속에서’ 얘기하듯 시끌벅적하고 동네방네 떠들어대는 호남 향우회가 있나요? 저는 몇년 전 "전라도 사람은 뒷통수 잘친다"고 확신하는 사람과 얘길 해본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알고 지내는 전라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로 저를 공포에 질리게 했습지요.  

제가 보기엔 오히려 설령 호남 사람들 모임 하더라도 남들 눈에 안띄게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합니다. ‘차별’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다들 있기 때문에 표적이 되길 바라지 않는 겁니다. (저 역시 그런 기억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홍세화 선생이 잘 지적했듯 한국에서 “너 경상도 사람이냐”는 질문과 “너 호남 사람이냐”는 질문은 그 차이가 너무나 분명해서 마치 미국에서 “너 기독교도냐”와 “너 무슬림이냐”에 빗댈 수 있을 정도입니다.

세 번째 편견은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훈훈한 TV화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 바로 ‘온정’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국은 ‘온정’이 넘치고, 그래서 ‘온정주의’가 법질서를 가로막는 부작용이 있다는 얘길 가끔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온정이 넘친다는 건 미국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이 합리적이고, 프랑스 사람은 똘레랑스가 넘친다는 말이나 별 차이 없습니다. 몇 해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미국측이 규정을 바꾸는 바람에 한일전을 몇 번이나 했는지,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뒤흔든 폭동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보기엔 뇌물이나 인사비리 등 부정부패가 온정 때문에 생긴다는 건 편견에 불과합니다. 정말로 ‘따뜻한 정’ 때문에 인사청탁이 통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뇌물을 비롯한 어떠한 댓가도 없을 때나 성립할 수 있는 얘기지요. 뇌물 받고 인사청탁 들어주는 건 말 그대로 ‘뇌물’을 받기 위해 댓가를 지불한 거잖습니까. 따뜻한 건 ‘정(情)’이 아니라 돈욕심이었던 게지요.

우리를 시끄럽게 하는 부정부패 가운데 따뜻한 정 때문에 일어나는게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뇌물을 노리거나, 자식들 비싼 학교 보내기 위해 법을 어기거나, 군대 가기 싫어 수술받거나... 모두 자기 이익만을 위해 행동한 결과입니다. 따뜻한 정 때문에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거나, 이웃집 아이들을 위해 위장전입을 해주거나, 장애가 있어 군대 못가 슬픈 친구를 위해 병역면제받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각설하고, 편견을 타파하건 안 하건 추석은 어쨌든 즐겁습니다. 즐거운 추석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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