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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대통령 목에 곤봉을 겨누는 경찰

by betulo 2009.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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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시는지. 

1995년 4월 28일 대구에서 지하철 공사장에서 가스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로 101명이 사망하고 202명이 다쳤다.

2009년 5월 23일 전 대통령 노무현이 고향 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는 죽었고 5000만명 중 못해도 2/3는 충격을 받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1동 영남중·고등학교 앞 상인네거리 지하철 1호선 제1∼2구간 공사장에서 가스가 폭발했다. 인근 대구백화점 상인점 신축 공사장(현재 롯데백화점 상인점)에서 지반공사하던 가스관을 파손했고 이 가스가 하수관을 타고 공사장으로 흘러들었다. 버스를 포함한 차량 150대가 파손되고 주택, 건물 등 80여 채가 파괴되었다. 사고가 아침 출근길에 일어났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고 한다.

한국리서치 주간동향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모두 6백만 달러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2007년 6월 부인인 권양숙 여사가 박 회장에게서 아들 건호 씨 주택구입 명목으로 백만 달러, 2008년 2월 조카사위 연철호 씨와 아들 건호 씨가 사업자금으로 5백만 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다.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검찰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소환 직후 곧바로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것처럼 보였지만 곧 딸 딸 정연씨가 미국 뉴저지의 고급 아파트의 계약금 40만 달러를 박 회장에게서 송금 받은 돈으로 지급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소환 3주가 흘렀고 노 전 대통령은 자살했다.

1995년. 당시 방송은 야구중계를 하느라 바빠서 사고 소식조차 제대로 전하지 않았다. 헌혈을 독려하는 방송도 제대로 없었다. 대구 시민들은 격하게 분노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방송에서 보도를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방송을 정부의 공식 창구처럼 느끼던 시절이었다.

2009년. 경찰은 시민들이 작년처럼 또 들고일어날까 너무 겁나서 경찰 버스를 동원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버스로 틀어막았다. 신문로 주변에 경찰버스를 두 겹으로 주차시켰다. 청계천 광장 주변을 막아버렸다. 심지어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설치한 임시 천막도 철거해 버렸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한참동안 시민과 대치했다. 서울 시민들은 격하게 분노했고 경찰은 그제서야 대한문 앞에 시민들이 조문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다만 경찰버스로 둘러싸서 압박할 뿐이다.

1995년. 5월 18일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대구 경북대에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출범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한총련은 꽤 똑똑하게도 대학생 헌혈운동을 조직했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몇 천 장은 모았다. 나도 기꺼이 헌혈했다. 그렇게 모은 헌혈증을 모조리 대구에 갖다 줬다.

2009년. 숱한 시민들이 대한문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봉하마을에서... 하여간 전국 곳곳에서 조문을 했다. 100만명은 며칠만에 넘겼다. 시민들은 꽤 똑똑하게도 불법폭력시위 운운하며 불법주차를 일삼는 경찰을 비웃으며 조용하게 조문을 했고 엄숙하게 고인을 추모했다.

1995년. 지금도 그러겠지만 당시 한총련 출범식 참가자들 사이에 대구에서 데모하다가는 경찰한테 잡혀가기 전에 대구 시민들한테 돌 맞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었다. 광주, 전남, 전북에서 모여든 대학생 수천명도 은근히 그런 게 신경이 많이 쓰였을게다.

2009년. 4월까지만 해도 ‘친노’란 뭔가 낡고, 고집불통인, 극렬 연예인 팬클럽을 연상시키는 단어였다. 노사모라는 이름보다는 노빠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졌다. ‘그래도 노무현 때는 이렇지는 않았다’는 말이 점차 힘을 얻어갔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지금 대통령이 잘한다는 말이 아니다. 난독증 앓는 분들 주의하시라.)

1995년. 한총련은 경북대에서 출범식을 마치고 시내행진을 했는데 평화대행진으로 주제를 명확히 했다. 경찰에서도 따로 경력을 배치하지 않았고 차선을 충분히 확보해줬다. 물론 한총련도 시내행진 마치고 더 욕심 부리지 않고 경북대로 돌아왔다.

2009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5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서울광장과 신문로 등을 꽉 에워쌌다. 높으신 분들이 ‘과격 폭력시위’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시민들은 경건하게 노제를 지냈고 운구행렬을 보냈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1995년. 정말이지 대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시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을 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쳤다. 그것도 한두명이 아니라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정부측이 가스폭발사고에 대처하는 일처리에 갖는 불만과 헌혈증 수천장을 기꺼이 보내온 학생들이라는 건 머릿속에서 명확하게 대비되는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그들은 운동권 학생들를 환영한 게 아니라 고마운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2009년. 길 가다가 소나기만 만나도 노무현 탓이라고 하던 게 ‘국민 스포츠’ 소리까지 듣던데 불과 2년 전이다. 하지만 노무현 당시엔 상상도 못했던 강부자 고소영 등 황당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고, 무능력이 드러나고, 실용적인 행태는 보이지 않고, 다만 “자파(自派)가 아니면 좌파(左派)”라는 해괴한 편가르기만 횡행하자 국민들은 노무현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가 추진했던 정책들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국민들은 분위기에 편승해 함부로 욕하고 비아냥댔던 지도자를 다시 기억한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욕했던 자신을 책망한다.

1995년. 거리행진을 하는데 경찰이 보이지 않았다. 경찰이라고는 다만 교통경찰만 보일 뿐, 우리에게 익숙했던 전경과 백골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경찰의 정치감각이 대단했다. 어차피 한총련에서도 평화시위하기로 명확한 방침을 정했다 대구시민들이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도 아주 안좋다. 괜히 충돌 일어나면 고스란히 정부에 짐이 될 뿐이다. 지지기반인 대구 시민들을 적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때 대구는 아무런 충돌도 없이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한총련 출범식은 대구에서 벌어진 한바탕 축제로 끝을 맺었다.

2009년. 노제를 마치자마자 경찰들이 몰려든다. 경찰이라고는 다만 전의경과 백골단의 후예들만 보일 뿐, 교통경찰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의 정치감각은 역시 대단하다. 노제가 끝나고 남아있는 시민들이 시청앞 광장에 계속 머무르면 자연스럽게 대규모 집회가 돼 버린다. 해가 지면 자연스레 촛불을 켤 거고, 그럼 작년처럼 시청 앞 과장에 대규모 촛불집회가 일어난다. 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수뇌부가 촛불을 얼마나 기피하는지 너무나 잘 아는 경찰이다.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경찰이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던 날 가만히 있었더라면 ‘소요 사태 우려’는 애초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원한 건 추모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경찰이 시청 앞 광장을 개방했더라면 적어도 현 정권에 마음이 가고 노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시민들은 자기 편으로 남겨둘 수 있었다고 본다. 1주일간 경찰이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을 막아서 시민들의 조문행렬을 방해하자 시민들이 너나 없이 “이건 좀 심한거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법주차를 해놓고 검은 옷을 입은 전의경들이(혹은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심지어 대나무 만장이 아니라 PVC 만장을 보여주자 현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자신이 없단 말인가. 이리 소심해서야 남은 3년 반을 어떻게 버티겠다는 걸까.”

이제 우리는 안다. 경찰이 없으면 정권안보 유지가 불가능해졌다. 경찰은 더욱더 정권유지에 매진할꺼다.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길어도 3년 반이다. 경찰 수뇌부는 10만 경찰들의 자부심과 성실함을 댓가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건가. 더구나 지금 경찰의 행태가 그 3년 반조차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경찰의 곤봉은 지금 대통령 목을 겨누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비록 나 자신 그 분 생전에 참여정부 정책에 대단히 비판적이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다를 바 없지만 적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이 거짓말쟁이는 아니라는 점, 부패한 집단은 아니라는 점, 일부 정책(특히 기록관리)에서는 꽤 괜찮은 성과를 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진중권 교수 말처럼 국내 정치인 중에 그분만큼 품격과 연륜을 갖춘 분이 없다는 말이 더욱 가슴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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