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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기자와 술을 생각한다

by betulo 2009.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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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훌륭한 기자는 술을 잘 먹고 술자리 끝날때까지 살아남는 기자라는 말을 믿은 적이 있었다. 당시 내 술자리 좌우명은 이런 거였다. "술자리 마지막 생존자는 항상 나여야 한다."

지금도 그런 자세로 술자리에 임하는 기자가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건 아니지만 내가 그런 기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굉장히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도 비용 대비 효과가 엄청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도 이젠 30대 후반을 바라본다. 자식도 있다. 무엇보다도 대략 7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술을 먹는다고 가정하면 6시간이 되는데 그 정도 시간이면 웬만한 책 한권 읽을 수 있다. 블로그에 글 두세편은 올리고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다.

술자리로 인해 생기는 택시비 등 부수비용은 또 얼마인가. 다음날 겪는 집중력 장애에 장기적으론 체중증가와 건강 위협도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거기다 취해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생명 위기상황’은 다시 떠올리기 끔찍할 정도다. (지금쯤 ‘정치적 생명’에 밑줄 그으며 보안분실이나 미네르바 떠올리는 인간들. 침 닦아라.)

가장 중요한 건 늦게까지 이어지는 술자리가 어떤 술자리인가 봐야 한다. 두세명이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소주잔 혹은 맥주잔을 기울이는 자리라면, 더구나 나와 같이 잔을 부딪치는 사람이 내가 싸부로 모시는 분들이라면 정말이지 유익한 공부시간이다. 마누라도 그런 자리는 이해해준다. 게다가 그런 자리는 과도한 음주를 하지도 않고 설령 기분 좋아 약간 과음을 해도 내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하는 많은 술자리, 특히 외부인과 마시는 자리는 인원수가 많고 약간 형식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른바 취재처와 마시는 합동 회식이 그런 자리인데 2차 3차 이어져 봐야 다음날 얼굴도 기억이 안난다. 처음 보는 사람 대여섯명과 술을 마시니 기억하기 힘든게 당연지사다.

폭탄주도 나를 위기에 몰아넣는다. 폭탄주는 소맥과 양맥으로 나눌 수 있는데 소맥은 대여섯잔 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술이다. 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면 내게 심각한 내상을 입힐 수 있다. 개인적으로 혐오하는 양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자리에서 뭔가 기사꺼리가 나온다는 것도 썩 긍정하기 쉽지 않다. 대개 그런 자리는 형식적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엔 그런 식으로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차라리 점심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는게 훨씬 친밀도를 높일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비용 대비 효과 면에서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결국 중요한건 기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 하는거다. 사교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술자리를 해야 한다고 할지 모른다. 나는 두가지 점에서 생각이 다른데 첫째는 사교성은 꼭 술로만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두번째는 훌륭한 기자가 갖춰야 할 조건이 꼭 술자리 오래 버티기는 아니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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