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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작품'을 만들기 위한 5단계 법칙

by betulo 2008.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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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쌈빡한 기획이 나오기 위해서는 5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번 교육부 특별교부금 기획도 그 5단계를 지나왔다. 쌈빡한 기획이라면 5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그리고 5단계를 거쳐야 쌈빡한 기획이 된다.


1단계. 영감(靈感); 뜨거운 게 머리에 꽂힌다.


  때는 8월 4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공부 싸부와 점심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 예산 얘기가 화제였다. 주머니에 3만원도 안갖고 다니는 두 명이 얘기는 언제나 몇 조원을 주제로 올린다.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소득공제가 예산에 미치는 영향, 15년간 대북지원예산이 1조 5000억 수준에 불과한데 퍼주기가 왠말이냐, 복지예산에서 4대보험 등 경직성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따져볼때 내년도 복지예산은 실제로 얼마나 삭감됐나…


  싸부가 무심결에 던진 얘기가 나에겐 ‘결정적 제보’가 됐다. “함께하는시민행동 팀장 이병국이 교육부 특별교부금 분석한다던데.”


  듣는 순간 느꼈다. 이거 대박이겠다. 얼른 잡아야 한다. 어물쩍 하다가 딴 놈이 채가면 안된다. 바로 이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특교는 나랑 같이 합시다. 할꺼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동기획보도했던 예전 사례를 늘어놓으며 동업자 관계를 강조하고 예산문제에 나만큼 관심있는 기자가 어디 있냐며 동질감에 호소한다. 이 팀장은 휴가중이라며 다음주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긍정적으로 검토한다는 말과 함께.


다음주 월요일 아침에 전화를 했다. 다시 재촉한다. 성공. 공동기획하기로 약속을 받아냈다. 기획안과 특별교부금 내역서도 이메일로 보내왔다. 자료를 꼼꼼히 읽었다. 특별교부금을 다룬 언론보도를 모조리 갈무리했다. 30장 정도 분량이 된다. 12일 저녁 맥주 한 잔 하면서 자료를 검토하고 작전계획을 논의했다. 9월 전에는 끝내자.


2단계. 용맹정진(勇猛精進); 고지를 향해 돌격개시!


언제나 그렇듯 뭔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기존 자료를 뒤져야 한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나온 예산안 검토보고서와 결산보고서,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나온 예산안분석보고서와 결산분석보고서, 감사원에서 나온 감사보고서를 모았다.


1000쪽은 돼 보이는 자료를 발췌요약하기 시작했다. 미리 생각해둔 기획안 순서에 맞춰 주제별로 정리하는 작업은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다. 광복절을 즈음해 사흘 정도 꼬박 자료정리를 하고도 월요일까지 걸렸다.


교육과학기술부 특별교부금 규모


(단위: 천원)


총액

시책사업비(60%)

현안사업비(30%)

재해대책비(10%)

교육부 소관 예산(억원)

2005년

790,660,678

474,228,515

237,114,257

79,038,086

279,820

2006년

824,031,273

494,244,000

247,122,000

82,374,000

291,273

2007년

944,973,247

566,797,680

283,398,840

94,466,280

310,447

2008년(안)

1,169,890,744

701,934,447

350,967,223

116,989,074

358,974



스승의날 즈음해 교육부 장관, 차관, 간부들이 모교나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해 특별교부금을 지원하겠다는 증서를 줘서 파문이 일어났다. 당시 일간지나 방송 대부분이 교육부 특별교부금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스승의날 즈음해 드러난 사실 말고는 “특별교부금의 문제가 많다고 하더라”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교육부가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서.”


교육부 장관, 차관, 간부들은 보도 직후 일선 학교에 준 ‘증서’를 토해냈다. 그 액수는 2억원이 채 안됐다. 특별교부금 올해 예산안 1조 1699억원의 0.02%도 안되는 돈이다. 특별교부금에서 현안사업수요가 특히 문제가 많다는 기사가 많았지만 특별교부금에서 현안사업수요는 30%다. 어느 기사도 특별교부금의 전모를 밝히지는 못했다.


국회와 감사원 자료를 50쪽 가량 분량으로 요약하면서 알았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만 읽어봤어도 특별교부금의 문제점을 다룬 기사를 훨씬 더 많이 쓸 수 있었을 거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언론은 예산문제를 다룰 때 경향성이 있다.


첫째, 작은 것에 분노하고 큰 것에 무관심하다. 둘째, 예산은 교육부 삽질이나 감사원 감사보고 등 사건기사 혹은 ‘내년에 달라지는 것’들 같은 달력기사로만 존재한다. 셋째, 예산기사의 대상은 언제나 나쁜넘이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나쁜넘이 없으면 기사가 성립하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기자가 1000쪽이 넘는 국회 예산정책처 결산분석 보고서에서 특별교부금을 다룬 내용이 있다는 걸 기억할까.


사전 작업을 끝내고 8월 20일 무렵부터는 아예 시민행동으로 출근해 분석작업을 같이 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원과 특별교부금의 관계를 분석하는 걸 먼저 시작했다. 경실련이 2002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쓴 분석방법을 그대로 적용해 보기로 했다. 문제는 이게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거다.


각 지방교육청에서 받은 자료 중 현안사업수요에서 학교 이름이 나오는 걸 엑셀에 입력한다. 학교가 여러 지역구에 걸쳐 있으면 빼버리고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학교가 나오는 것도 빼버린다. 학교이름과 사업명, 일시와 액수를 입력한 뒤 학교 주소를 검색해서 지역구별로 정렬한다.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에서 해당되는 학교지원을 2005년, 2006년 2007년에 걸쳐 정리하는거다. 정리가 끝나면 교육위원들의 통계를 따로 뽑고 지역별 현황도 파악하고 전체 액수와 전체 평균 등 추가분석을 한다. 이런 일련의 작업에 거의 일주일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시민행동에서 정고공개를 통해 입수한 장관 '방문증서' 서울용산초등학교는 교육부 전 장관 김도연의 모교다.


현안사업수요를 분석하니 자연스레 교육부 장관들이 일선 학교에 지원한 것도 사례를 엄청나게 찾을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특정 지역에 지원하면서 액수가 1000만원이나 2000만원이고 ‘도서구입’ 혹은 ‘교육기자재 구입’이라고 써 있으면 백발백중 장관님 행차하신 거다. 거기다 올해 현안사업수요 집행내역에 나온 학교들을 교육부 홈페이지에 있는 장관 동정이나 언론보도와 보도자료 등과 비교하니 장관님 행차하신 전모가 드러났다. 언론에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더 있었다. 심지어 총리님 행차도 계셨다.


특별교부금의 10%를 차지하는 재해대책수요도 분석대상이 됐다. 재해대책 사례를 수집하고 국가재난정보센터에서 재난 피해액수를 수집했다. 이 두가지를 비교해보니 눈에 띄는 결과가 나왔다. 바로 재해가 발생한 곳과 실제 재해대책지원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거기다 전체 재해대책비 가운데 90% 가량이 지방교육청 인센티브로 갔다. 다행히 이 작업은 이 팀장이 거의 다 했다. 나한테는 천만다행이다. ㅋㅋㅋ


3단계.  번뇌(煩惱); 뭔 놈의 고지가 이리 높더냐.


시민의신문에서 일할 당시 시민단체 연결망분석을 기획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2개월에서 3개월 가량 하루종일 엑셀작업만 했다. 시민단체 홈페이지 검색하면서 연계활동을 찾아서 입력하는 일이었다.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게 된다.


이번 분석도 그랬다. 8월 마지막주는 이 팀장이 아예 서울신문으로 출근해서 작업을 같이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팀장과 나 모두 지쳐갔다. 몸은 찌뿌둥 하고 눈은 침침해지고 집중력은 떨어져 간다.

말 그대로 과로 증세에 시달린다. 밤 10시를 넘겨가며 분석작업하고 중간중간 토론하고 또 분석하고 토론하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는 몸이 천근만근이다. 나는 그래도 한 번 잠들면 말 그대로 시체가 되기 때문에 좀 낫지만 잠을 잘 못잔다는 이 팀장은 아예 밤을 세워 작업하기 일쑤였다.

위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예산에 대한 '감'이 없는 주위 시선도 상당히 거슬리기 일쑤다. 사람들은 모른다. 예산분석이 얼마나 노가다인지. 제대로 된 기획이 되려면 예산데이터분석을 1단계로, 현장취재를 2단계로 해야 한다. 그게 결합해야 한다. 하지만 1단계가 끝나갈 무렵 나는 말 그대로 '퍼져 버렸다.'


기획준비에 들어가고 나서 거진 3주 동안 신문을 전혀 보질 못했다. 이 팀장과 나 모두 9월 1일 발표된 세제개편안에 두 눈 부릅뜨고 관심을 가질만 했건만 기획에 밀려 그조차도 스쳐 보냈을 정도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그나마 있던 약속을 다 미루거나 취소했다. 술자리 약속도 만들지 않고. 취재원 만날 시간도 아끼려고 나중에는 다 전화인터뷰로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수습기자들을 부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8월 29일 처음으로 수습 두 명이 기획탐사부에 왔다. 수습들은 하루씩 부서를 돌면서 인사도 하고 부서에 대한 설명도 듣는 중이었다. 기탐부에 온 수습들은 하루종일 엑셀작업만 해야 했다. 금요일과 일요일, 월요일 연인원 6명에게 엑셀작업을 맡겨놓고 나중에 수치를 확인하는 식으로 하니 업무하중이 상당히 줄었다.


4단계. 초월(超越); 대충 혀~


고지를 향해 돌격하다가 몸도 지치고 머리는 멍해질 즈음, 드디어 4단계에 진입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거다. “생각해보면 애초 목표했던 걸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잖아. 며칠만 더 하면 모든 분석작업을 끝낼 수 있어. 아등바등 할 필요 있나?”


3단계 과로가 극에 달하면 4단계에 들어설 수 있다. 4단계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해진다. “까짓거 대충 하면 되지.” 하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면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정도 단계가 되면 기획을 거의 마무리할 때가 된거다. 분석작업을 점검한 다음 최종정리 파일을 만들고 기사기획안을 마무리짓고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3단계로 회귀하려는 마음을 강경진압하면서 4단계 초월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 ‘편안한’ 마음으로 기사를 쓴다. 그러는 와중에 기사도 다 쓰고 보도날짜가 잡혀서 교정지도 나온다.


5단계. 해탈(解脫) 혹은 회한(悔恨)


생산의 고통을 거친 뒤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드디어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신문에 기사가 나왔다. 이 팀장과 고생을 자축하고 싸부한테서 수고했다는 격려전화도 받고 포털사이트와 내 블로그에 방문자수는 얼마나 되나 보기도 한다. 이 단계에선 ‘자뻑’ 모드에 자주 빠져든다. 댓글 얼마나 달렸나 일삼아 확인해보고 지인들한테 아닌척 하면서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런 와중에 회한(悔恨)이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때 그걸 더 했어야 하는데, 누구누구를 직접 만나서 얘길 더 많이 들었어야 했는데, 기사를 더 잘 구성했으면 좋았을텐데… 하지만 다 부질없다.

가장 아쉬운 건 아까도 말했지만 현장취재를 풍부하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현직 서울시 교육위원, 국회의원을 더 많이 만났어야 했다. 현직 교사들도 많이 만나고 무엇보다 교육청을 직접 방문해 얘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파악해야 했다.


회한을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 해탈을 통해 껍질을 깨고 나왔으니 더 이상 껍질에 미련을 가지면 안된다. 잠시 기획물을 ‘관조(觀照)’하며 그윽하게 ‘썩소’를 날린 다음 새로운 기획을 찾아 떠날 뿐이다. 새로운 1단계가 나를 기다린다.



080904-1면 특별교부금 연재1회차.pdf

080904-2면 특별교부금 연재1회차 (이어진기사).pdf

080904-6면 특별교부금 연재1회.pdf

080905-1면 특별교부금 연재2회차.pdf

080905-6면 특별교부금 연재2회차.pdf

080909-12면 연재3회차 좌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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